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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타케시 영화 <하나비>

기사도와 마초 사이, 한 여자를 향한 불멸의 불꽃 놀이

by 꿈꾸는 곰돌이

하나비: 기사도와 마초 사이, 한 여자를 향한 불멸의 불꽃 놀이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1997년작 <하나비>는 제목이 품은 '불꽃놀이'의 의미처럼, 격렬하면서도 애틋한 삶의 폭죽을 터뜨리는 작품이다. 감독, 각본, 편집, 주연을 기타노 타케시가 직접 도맡아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응축한 이 영화는, 인생의 가장 암울한 순간에 선 한 남자가 아내를 향해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사랑과 슬픔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여자를 향한 최후의 불꽃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지르는 마초적 기사도 니시 형사의 이야기다. 영화의 매력은 각본보다는 연출이다 <하나비>에서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불멸의 불꽃놀이'와 같은 서사를 어떻게 시각적, 청각적으로 구축했는지, 특히 '기타노 블루'로 대표되는 색채감과 히사이시 조의 감성적인 OST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기타노 블루: 슬픔을 머금은 미학
촬영감독 사이에서 교과서적으로 전해지는 괴테의 <색채론>를 통해, <하나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미학적 특징은 바로 '기타노 블루'를 살펴보자. 영화는 sov의 유무와 상관 없이 시종일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전반적인 화면에 푸른색 톤을 지배적으로 활용하며 독특한 색채감을 구축한다. 이는 단순한 풍경 스케치가 아닌,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그의 《색채론》에서 제시한 색채 인식론과 맞닿아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괴테는 뉴턴의 빛의 분리 이론에 반하여, 색깔은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 즉 빛과 그림자의 경계면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괴테의 <색채론>에 관한 글은 두 글을 참고했다.
https://m.blog.naver.com/goino1/22107933237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26360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비> 속 푸른색은 단순한 색조를 넘어, 니시의 삶을 지배하는 밝은 사랑과 어두운 폭력, 희망과 절망이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심리적, 감정적 경계를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괴테는 푸른색을 어둠과의 연관성 속에서 설명하며, 무게감과 차분함, 그리고 서정적인 감성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하나비> 속 기타노 블루는 니시의 고독하고 쓸쓸한 내면, 폭력성 이면에 숨겨진 연약함,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아내와의 동행이라는 비극적인 서사를 푸르게 감싸 안는다. 이는 괴테가 색깔이 단순히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감정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영화의 잔인하고 비극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화면 가득 펼쳐지는 아름다운 푸른 색감은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을 선사하며, 마치 불꽃놀이가 터지기 전의 고요한 밤하늘처럼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영화의 비극적인 서사를 애틋하게 낭만화한다. 기타노 블루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니시의 삶의 단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색채이다.



히사이시 조의 영혼을 울리는 선율

영화의 시각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관객의 귓가를 사로잡는 것은 히사이시 조의 OST이다.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HANA-BI'를 비롯한 수록곡들은 기타노 타케시의 절제된 연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섬세한 감정선을 유도한다. 대사가 많지 않은 장면에서 히사이시 조의 선율은 니시의 고뇌와 아내를 향한 무한한 사랑,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비극적 운명을 대변한다.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비장하게 흐르는 음악은 기타노 블루의 시각적인 미장센과 결합하여 <하나비>를 단순한 범죄 드라마를 넘어선 한 편의 시정시처럼 승화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음악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미한 희망이 교차하는 영화의 모든 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관객의 감정선을 깊이 자극한다.

나는 마초적인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폭력으로 빚어진 살인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무척 단순한 이유로 수많은 적들을 학살하며, 최후에 자신과 사랑하는 여자도 스스로 숨운 거둔다. 피빛 폭력의 명분이 오우삼 세계에서 '의리'라면, 기타노의 이 영화에서는 한 여자를 향한 무구한 '사랑'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니시의 여정이 기사도와 마초적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한 여자를 향한 '불멸의 불꽃놀이'를 그린 이 영화에서는 기사도적 정신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니시의 마지막 총성을 떠올리며, 흐르는 풍경에 니시가 떠올릴 법한 구절의 시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투명 유리조각처럼
-진은영, <청혼> 중




참고문헌

- '하나비', 기타노 다케시의 불꽃놀이 – 브런치
- 하나비//키타노 타케시/1997/일본/103분/범죄, 드라마, 로맨스, 스릴러 – 다음 영화 정보
- 영화 하나비 감상문 – 레포트월드
- 다케시의 공허하고 투명한 세계, <하나비>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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