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멸을 통해 마주하는 궁극적 에로티시즘
<소나티네>, 삶의 소멸을 통해 마주하는 궁극적 에로티시즘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영화 <소나티네>는 붉다 해야 할까, 아니면 푸르다고 해야 할까? 푸른 바다와 하늘의 색채로 연출된 '기타노 블루'는 분명 인상적이지만, 이는 단지 배경일 뿐 영화의 본질은 죽음에 있기에 붉다고 말하고 싶다.
<소나티네>는 냉혹한 야쿠자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이면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허무와 죽음 충동을 통한 '삶의 절정'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가 제시한 에로티시즘의 본질에 깊숙이 닿아 있다. 바타유에게 에로티시즘은 육체적 쾌락을 넘어선, 삶의 통상적인 연속성을 파괴하고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개별 주체가 궁극적인 자아 해방에 이르는 경계적 경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정점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에로스는 타나토스는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양대축이면서도 두 충동은 맞닿아있다.
영화 속에 이 이론을 적용해보자. <소나티네>의 주인공 무라카와는 조직 내 갈등으로 오키나와에 고립된 야쿠자 보스이다. 그는 생존을 위한 투쟁 대신, 삶의 의미가 상실된 허무함 속에서 죽음을 향한 이끌림을 드러낸다. 오키나와 해변에서 펼쳐지는 부하들과의 유희는 역설적으로 삶의 무의미함을 극대화하는 유예된 시간이다. 이 공간에서 폭력과 죽음은 예측 불가능하게, 때로는 아무런 서사적 의미 없이 돌연 발생한다. 이는 생명의 연속성을 단절하고, 죽음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소비되는 행위'로 그려낸다. 죽음은 어떤 목적이나 인과 관계 없이 발생하며, 모든 삶의 가치가 소멸된 허무의 정점이다. 무라카와의 무표정한 얼굴과 체념적인 태도는 이러한 죽음이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불가피한 운명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결말부에서 무라카와의 죽음은 건조하고 허무하게 그려진다. 일반적인 느와르 서사에서 주인공이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과 달리, 무라카와는 비루하게, 그것도 건조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폭력의 순간을 미화하지 않고, 건조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묘사한다. 갑작스러운 총성과 함께 인물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장면은 삶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죽음의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이는 바타유가 강조했던, 삶의 금기를 초월하여 죽음에 근접함으로써 발생하는 주체성의 해체와 맞닿아 있다. 무라카와는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금기에 저항하기보다, 오히려 그 안으로 자신을 던져 넣음으로써 일상적 삶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죽음 충동'을 내재한 인물이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삶의 연속성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일종의 해방감처럼 비쳐진다.
연출의 층위를 깊게 살펴보자. 우선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 일명 '기타노 블루'는 바타유적 에로티시즘의 색채인 피의 붉음과는 명백히 괴리되어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이 이질적인 색채감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바다는 무한하고 경계가 없으며, 모든 것을 품고 또 삼키는 속성을 지닌다. 한편으로 푸른 색채는 죽음의 냉담함을 표현하며, 작중 허무감을 극대화한다. 반면 서사의 핵심인 피의 붉음은 생명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강렬한 충돌을 상징한다. 이 두 색채는 표면적으로 이질적인 듯 보이지만, 이러한 색채 대비는 죽음과 폭력이 충격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시각적으로는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푸른색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나약하고 폭력적인 행태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면서 삶의 비극성과 허무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 죽음을 품어버리는 푸른색은 붉은 폭력의 순간을 더욱 날카롭게 대비시키며 삶의 의미를 질문하게 만든다. 기타노 타케시는 그 질문을 비웃는 듯, 무라카와의 마지막 행위는 삶의 최종 금기를 위반하고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지극히 바타유적인 '극단적 경험'이자 궁극적인 해방에 도달하려는 시도이다.
<소나티네>는 일반적인 인간의 생존 본능을 거스르고, 죽음을 통한 자아 해체와 궁극적 초월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는 푸른 색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삶의 의미가 박탈된 허무주의적 공간인 오키나와 가다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에로티시즘, 즉 자기 소멸을 통한 강렬한 삶의 경험과 해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