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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꿈꾸는 곰돌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 진정한 사랑의 유물론에 대한 고찰



영화의 윤리적 기능 중 하나는 사색의 층위를 깊게 도달하도록 도와준다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3년 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사랑의 유물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근원적인 질문과 사색할 거리를 제공하는 명작이다.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사랑의 유물론인지, 아니면 경험을 함께 한 것이 사랑의 유물론인지에 대한 사유가 그렇다. 내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사랑의 유물론은 혈통이 아닌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 노노미야 료타는 전형적인 '보수적 사랑'의 관점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가족이란 성공한 삶의 상징이며, 아들은 자신의 혈통을 이어받아 완벽하게 자라야 하는 존재이다. 6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아들 케이타가 자신의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세계는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는 혈연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며, 친아들 류세이에게 억지로 정을 붙이려 애쓰고 케이타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피로 이어진 관계만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 협소한 유물론적 시각에 갇혀 있는 그의 모습은 다분히 보수적이다. 이는 사랑을 마치 재산처럼 상속되는 물리적 대상, 즉 DNA라는 고정된 정보로 한정 지으려는 태도이다.



하지만 영화는 료타의 이러한 '혈통 중심적 사랑'이 지닌 한계와 공허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료타는 친아들과의 낯선 관계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결국 케이타와 함께했던 지난 6년의 시간 속에서 자신이 진정한 아버지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케이타가 몰래 찍어둔 료타의 잠자는 모습 사진들을 발견하는 순간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그 사진들은 혈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함께 쌓아온 무수한 기억과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응축하여 보여준다. 나에게 있어 이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물질'이 된다.

이 지점에서 키워 준 '정', 즉 '경험적 휴머니즘적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유물론이며, 더 나아가 '진보적 사랑'의 형태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단순히 생물학적 유전 정보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웃고, 울고, 배우고, 서로에게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며 만들어가는 '정'이야말로 사랑을 구성하는 핵심 물질이다. 혈통이 과거로부터 주어진 고정된 형태라면, 경험은 현재를 살아가며 끊임없이 축적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이다. 료타가 케이타에게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피가 아닌, 공유된 경험과 정이라는 진짜 사랑의 물질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퀀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료타는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고, 나에게 이 모습은 사랑이 곧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관계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정'의 개념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류애'로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사랑이 혈연이라는 배타적이고 좁은 테두리 안에만 머무른다면, 세상의 모든 비혈연의 타자는 배척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레에타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피가 아닌 경험으로도 강력한 사랑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가능성을 혈연을 넘어 무한히 확장시킨다. 우리에게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 할지라도, 함께 시간을 나누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정'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이야말로 개인적인 유대를 넘어, 보편적인 인간적 교감과 돌봄에서 비롯되는 인류애의 시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매 순간 함께하며 축적되는 경험의 산물이며, 그 경험으로부터 피어나는 정이야말로 가장 진보적이고 깊이 있는 사랑의 형태이다. 정을 구성하는 시간은 계급과 성별을, 때로는 국적과 민족을 초월해 평등하게 주어진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마저 상품화되기 때문에, 확언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정은 결국 인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휴머니즘의 시작점이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렇게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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