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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Oct 09. 2023

영혼적 댄디즘에 대한 찬사

마르크스주의자가 보는 보들레르

 우울증, 조금 더 학술적인 용어로 멜랑꼴리는 동서고금 천재들의 원동력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관측된 멜랑꼴리커들은 예술을 비롯한 인문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다. 괴테, 위고, 쇼펜하우어, 니체,  벤야민 등 위대한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은 멜랑꼴리커였다. 그 중 가장 독보적인 한 명을 뽑자면, 샤를 보들레르를 뽑고자 한다.


 보들레르를 일종의 숭배하는 벤야민은 보들레르라는 멜랑꼴리커가 소외를 가속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만나, 예술을 양상하는 것에 주목한다. 선천적인 인간적 고독감과 초기 자본주의의 소외가 결합물은 보들레르의 몇 안되는 시집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을 만들어냈다. 이 시집은 체제가 만들어낸 비운의 천재의 댄디즘-영혼적 귀족주의를 담고 있다.


 보들레르는 반자본주의적이다. 그렇다고 결코 좌파적이지도 않다. 반자본주의적인 우익 사상가들-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을 닮아있다. 기술에 회의적이었으며, 특히 여성을 혐오했다. 자본주의보다도 못한 봉건체제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마르크스주의자 역시 반자본주의적이다. 자본주의의 소외로 인해 진보가 아닌 퇴보적 경향에 빠진 보들레르의 천재성이 아쉽지만, 그의 천재성-특히 영혼적 귀족주의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자 한다.


 영혼적 귀족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사실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영혼도, 귀족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자이지만 보들레르가 정신적 우월감으로 소외를 극복하려는 기획 자체는 일리가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화되는 다중에  맞선 체제에 불만을 느낀 선구자인 보들레르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인 나 역시 영혼적 귀족주의자다.


 물론 귀족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전제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어긋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귀족주의란 반체제의 선구자로서 느끼는 자부심이자 소외 극복의 이데올로기이다. 결코 태생적 우월감에 가득찬 귀족주의가 아니다. 귀족만 잘 났다는 식의 귀족주의를 넘어, 선진적인 정신의식의 자부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영혼적 귀족주의로 타인에게도 영혼적 귀족주의를 전염시켜 선진적 의식을 갖도록 계몽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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