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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Oct 12. 2023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조잡한 양비론을 넘어 반제국주의 투쟁을 지지한다.

 

 최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화제가 되고 있다. 200여명 정도가 참여한 이 시위를 두고, 우파들은 물론 온건한 대중마저 비판하는 여론이다. 진보 좌파들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박노자는 극우 단체를 어떻게 지지하냐며 비난을 한다. 역겨운 학살 동조자들이다.

 

 그래, 나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팔레스타인을 악마화하는 우파언론들의 주장은 늘 그렇듯 학살을 찬사한다. 그렇다고 박노자를 비롯한  조잡한 양비론이나 펼치는 한경오 수준의 진보 언론의 주장 역시 학살에 침묵하는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국제프롤레탈리아 이론이고, 만국의 프롤레탈리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이 점에서 국익에 이스라엘이 도움되니 이스라엘 따위를 지지하자는 주장은 우습게 들린다.(물론 이마저도 틀렸다. 국익차원에서는 서방-중동 진영에서 중립을 취하는게 낫다) 국익이 결코 한국에 사는 노동자-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다. 그렇기에, 계급의 이익을 지지하는 측면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이스라엘은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산물이 낳은 강탈국가이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데올로기인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단일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정치 운동으로, 19세기 유럽의 유대인 박해와 학살에 대한 반응의 하나로 나타난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해 이른바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이 국가를 건설하려 한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다. 그래서 시온주의자들은 서구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아 원주민들을 몰아내려 했으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온주의자들을 지원했다. 중동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 줄 경비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국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미국이 시온주의자들을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고,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대로 살아 온 집과 마을에서 쫓겨나고 학살당고, 무려 8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이 돼 이스라엘 내부와 인근 나라들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인종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사실상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에 가깝다. 그렇기에, 아무리 하마스가 반공주의 성향이고, 강성 이슬람 율법을 고수한다고 해도 팔레스타인의 지지를 받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한 방 먹인 것은 기뻐할 일이다.


분명 마르크스주의자라면, 하마스의 극우적 행보에 반대해야겠지만, 우선은 제국주의에 맞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이들의 투쟁 방식을 두고 양비론적 비판을 한다면, 그것은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민족 해방 투쟁을 누가 어떻게 지도하는지를 비판하기 전에, 우선 먼저 그 투쟁을 듬뿍 지지해야 한다.


레닌은 "식민지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와 동맹해야 한다"고 말했고, 트로츠키도 이탈리아의 에디오피아침공에 맞서, 에디오피아 국왕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왕'이라는 봉건제 체제일지라도,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민족 해방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민족 해방 투쟁을 지지해야 식민지 국가의 이중 착취 중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착취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평화적인 해결책을 다 시도 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없었다. 인종청소와 제국주의적 야욕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 위해 무장 투쟁을 해야 했다. 무장 투쟁 방식이 결코 인권에 친화적이지 않을 지라도, 그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투쟁은 위대한 성전이다. 반제국주의 투쟁을 위해, 연대하고 연대하고 또 연대해야 한다. 민간인 학살에 관한 내용은 상당수가 거짓 뉴스일 뿐더러, 이것을 이유로 팔레스타인 저항을 흡집내서는 안된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자, 이스라엘은 해체하라, 서방 제국주의 패망해라


참고 글

https://wspaper.org/article/3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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