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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Nov 07. 2023

평화 협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팔레스타인 비극을 끝내기에는 무력한 평화 협정, 해답은 인티파다!

<이스라엘, 제국주의, 팔레스타인 항쟁 > 소책자를 일부 인용 및 발췌함   



올해 10월부터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팔레스타인 항쟁,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이스라엘 국가의 기원을 이해해야 한다. 이 소책자는 써진 지는 조금 오래되어 보이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항쟁을 이해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이번 저항처럼, 이스라엘은 과거 늘 ‘테러’라고 부르는 무장 투쟁을 문제 삼아 침공을 해왔다. 그것의 원인은 전적으로 제국주의의 파수견 이스라엘에 있을뿐더러, 학살당한 팔레스타인에 비해 매우 극소수일 뿐이다. 제2차 팔레스타인 항쟁은 시온주의와 제국주의의 동맹 때문이 만든 억압받는 팔레스타인들의 정당한 저항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는 19세기말 부터 드리워졌는데, 중동 민중이 수십 년 동안 식민 지배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원인은 석유를 차지하려는 제국주의 국가의 야욕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의 탄생 역시 제국주의의 국가인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식민지 정착민들의 국가를 건설하면 중동에서 영국의 석유 이권을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그래서 유럽에서 인종차별로 고통 받았던 유대인들 중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아시아에 대항하는 유럽의 성벽의 일부이자, 문명의 전초기지’를 세울 것을 건의했고 영국 정치인들은 시온주의자들을 후원해야 영국이 중동을 지배할 수 있는 식민 세력을 창출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17년 벨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 신화에서 “땅 없는 사람들에게 임자 없는 땅”을 제공하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가 받아들여졌고, 이는 중동 비극의 시발이 되었다. 비극의 시발 국가 이스라엘의 이데올로기 시온주의는 유대인들 중 소수였지만, 홀로코스트의 피해에 대한 동정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곧 반유대주의로 곡해되어 악용되었다. 이스라엘을 나치에 있는 그대로 비유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지 언정, 이스라엘은 나치가 하던 못된 짓을 여러 개 닮아 있는데, 인종차별과 학살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에게 알 나크바, 즉 대재앙의 날이었다. 우익 민병대가 테러를 벌이며 팔레스타인인에게 잔인한 학살을 했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향을 잃었다. 틈만 나면 무슬림들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했고,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테러이다. 이런 학살의 배경에는 아메리카 커넥션이 있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을 탄압할 목적으로 만든 게 분명한 장비들을 판매했고, 건국이래 4백 60억 달러가 넘는 군사 원조를 했다. 이스라엘은 거기다가 미국이 공개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국가들에게 군사 장비를 제공하는 중개상이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뒷배가 있을지라도,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은 계속 되었다. 카피예와 팔레스타인 국기로 대표되는 저항의 역사는 길다. 1960년대말이 되자 의미있는 저항 조직들이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초기 파타 지도부는 무장 투쟁을 통한 저항을 주장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중적인 민족 해방 투쟁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무장 게릴라 투쟁과 막후 외교를 병해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PLO는 미국에 접근해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협력했고, 이스라엘은 1990년대 초가 되어야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스라엘이 착한 양이 된 것이 아니라, 바로 1987년에 발생한 인티파다 덕분이었다. 그덕에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자만심을 산산조각 냈다. PLO에 힘을 실어준 저항은 결국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협력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슬라엘은 교훈을 얻고 협력하는 듯 했다. 그러나 1990년대의 평화협상은 요르단강 서안을 병합하기 위한 근거가 될 뿐,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국경봉쇄, 인권유린을 비롯한 억압조치는 평화협상의 결과였다. 결코 팔레스타인 민중은 평화를 염원하지 않는다. 중동에 평화는, 평화협정 따위로 쉽게 건설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중동을 강탈하는 더 넓은 비극의 일부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제국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평화란 허울 좋은 그릇일 뿐이다. 오직 비인간적인 학살에 맞서는, 스스로 벌이는 투쟁만이 중동의 민중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투쟁에서 중동 민중은 단결하여 인티파다로 제국주의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사는, 전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해로운 제국주의에 맞서는 연대 운동에 앙가주망 해야 한다. 그것이 학살에 반대한는 존재로서의 울부짖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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