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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Nov 22. 2023

“공산주의란 실존적 주체”

알랭 바디우의 <투사를 위한 철학>을 읽고

“공산주의란 실존적 주체”


 <사랑예찬>에 이은 또 다른 알랭 바디우의 책을 읽었다. <투사를 위한 철학>이라는 2010년대 초,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바디우가 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묶어낸 책이다. 원래 알랭 바디우하면 <존재와 사건>이 핵심적인 철학서이고, 그 외 반철학 세미나가 유명하지만, 아직 철학 비전공자인 내게는 최근 쓰여진 강의록이 쉽게 느껴져 역행해서 읽고 있다. 사실 강의 제목은 ‘철학과 정치의 수수께끼 같은 관계’지만, 영어 번역본인 <투사를 위한 철학>에서 따와, 그 외 몇 개 강의록을 넣고 만들어진 책이다. 보통 인류 철학사를 논할 때, ‘소크라테스부터 ~까지’라는 표현을 많이 넣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에는 바디우가 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박하는 레닌주의자로, 놀랍게도 현대 정치의 근간인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상당한 비판을 하며 현대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플라톤과 유사한 주장을 한다.

 이 중 첫 번째 장인 ‘철학과 정치의 수수께끼 같은 관계’에서는 한 마디로 플라톤에서 시작된 철학의 역사를 훑으며,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예찬한다. 정확히 말해 철학은 역시 민주주의 중 국가 형식의 민주주의를 강렬히 비판한다. 선거, 국회의원, 입헌적 정치 등 민주주의의 이름 안에 행해지는 사유재산, 유산상속, 부의 집중, 분업, 금융 범죄, 식-식민주의 전쟁들, 가난한 자에 대한 박해 그리고 부패를 비판한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 운운하며, 중동을 난장판 만들고 이스라엘이 민주주의국가로 포장하며 제국주의 경비견 노릇을 하는 현실을 보면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대신 그는 대중적인 민주주의, 능동적인 민주주의에 찬사를 보낸다. 대규모 집회, 시위, 반란, 봉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 능동적인 행동은 민주주의가 곧 정치적 진리가 아니라 정치적 진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철학 역시 민주주의이며, 새로운 체험과 담론의 새로운 지위를 위한 조건이다. 그래서 바디우는 철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규범도, 법도, 목적도 아닌 대중의 해방을 위한 여러 가능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즉, 민주주의는 철학의 조건이다. 이 맥락에서 공산주의를 실존적 주체라고 말한다. 현재의 민주적인 국가와는 완전히 다른 민주주의적 정치의 실존을 위한 현실적인 조건이 철학의 형식적인 조건을 지탱한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란 장소의 가설로, 거기서는 누구든 의문을 제기하고, 논변할 수 있는 해방적 정치 공간이다. 이 지점에서 플라톤이 귀족정을 인민의 집단성 전체로 확장하려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느낄 수 있다, 바디우에게 정치, 민주주의, 철학 사이의 연결고리는 정치의 독립성이 철학의 민주주의적 조건이 변모하는 장소를 창조하는 데 있다. 즉, 바디우는 실천을 하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철학을 하는 철학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철학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철학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은 바로 실천의 영역으로 들어가 기존의 지배 질서를 부수고 다른 새로운 질서를 개척하라고 말한다.

 공산주의는 실존적 주체라는 멋진 테제를 남겼고 철학의 민주주의를 고찰한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글이지만 그 실천에 대한 방법에서 비판할 점도 있다. 가령, 문화대혁명을 진보적인 좌익활동으로 묘사하나,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지배 권력 강화 운동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처럼 보이나, 실제로 그는 위로부터의 잘못된 사이비 사회주의(국가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철학적으로 재해석된 '스탈린주의'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가 마오주의자인 것은 워낙 유명한 것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학습이 필요하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 정치에 대해서 조금 더 찾아봐야 겠다.)


그렇지만 철학이 어디에 있든 간에, 철학에게 주어진 실천적 운명을 강조한 점에서 투사를 위한 철학이라는 영문명에 부합하는 실천적 강연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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