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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Dec 14. 2023

"아, 살아 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거인들은 사후에 수기나 일기마저 책이 된다. 아주 뼈속까지 남긴 없이 연구자와 독자에게 먹힌다.  세계적으로는 메모가 된 책으로 마르크스의 《경제철학수고》,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바르트의 《애도일기》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가 그렇다.


 거인이 끄적이던 메모는 거인의 발자국들이다. 김현 선생의 발자국은 인류지성사를 관통한다. 호메로스부터 기형도, 남진우, 황인숙까지.., 바슐라르, 사르트르. 푸코, 레비나스 같은 프랑스 사상가부터 루카치, 하이데거, 에코, 장자, 노자 같은 동서고금 중요한 사상가들은 죄다 언급한다. 한마디로, 책을 읽고 있으면 지성사와 80년대 시대상이 교차한다. 값진 교차로에서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배운다는 생각하에 사유를 추적하면 된다. 일종의 아포리즘이다.


다만 김현의 무기고에는 무기가 참 많다. 일관된 비평 이데올로기가 없고, 사르트르, 바슐라르, 구조주의, 정신분석, 기호학등 다양한 방식을 차용한다. 박학다식하다는 말로도 선생의 지적 세계를 담아내기 힘든 것 같다.


 기본적으로 화려한 수사없이 정갈하게 비평하고, 사유한다." ~의 시는 ~은 있으나, 깊지 않다"의 식으로 써져있다. 훗날 문단 내 최고로 올라서는 후배 문인들이나, 심지어 선배 문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정갈히 비평한다. 비평의 대상은 시대도 그의 메모에 오른다. 미국도, 한국 정권도 마찬가지로 비판한다. 오히려 시대에는 더욱 과감하게 비판한다.  정갈함을 숨긴 체, 만행을 폭로한다.  


 그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를 자처하는 문학도로서, 김현의 사유에 오른 것에 만족한다. 정갈한데, 애정이 있는 그의 글쓰기는 읽어보지 않은 책도 선험적인 독서를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지점에서 비평가들의 비평가로 불리는 이유를 찾은 것 같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3단을 통해, 깊고도 두렵지 않은 글쓰기를 한 김현 선생의 요절이 안타깝다. 특히나 마지막 메모 "아 살아있다"에서 더 이상 그의 비평을 볼 수 없어 슬픔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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