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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Dec 09. 2023

슬프기만 한 수 많은 아침들,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김진영 선생님 유고 산문집 《아침의 파아노》는 바르트의 《애도일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남아있다. 비타 노바를 외치며, 스스로를 애도하는 일기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직접 번역한 《애도일기》를 읽게 되었다.



사실 롤랑 바르트라는 꾀나 비중이 큰 문예이론가의 글은 처음이다. 2차 저작에서 '텍스트론'에 관해 읽은 적 있지만, 원작은 처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책이 어렵지는 않다. 이론서도 아닌, 애도의 메모를 편집한 산문집이라 감정만 견뎌낸다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무거운 메모들이 애도를 하는 대상은 바르트의 어머니, 마망이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 같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무척이나 무겁다. 에로스도, 플라토닉도 아닌 실존의 의미를 주는 사랑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없는 그의 애도일기에서는 결코 애도가 담겨있지 않다. 애도 없는 애도일기다.


내용 자체도 일관성도 없고, 논리적으로 전개되지 않지만 모든 메모가 마망을 이야기한다. 빈공백들과 얆은 분량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두고, 리비도의 복귀라고 말한다. 그래서 반대로 리비도가 복귀하지 못한다면, 멜랑꼴리다. 우울로 번역되는 멜랑꼴리의 특징은 무기력함이다. 실존의 의미가 없으면 무기력할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도일기는 애도 없는 멜랑꼴리의 일기다. '사랑'을 잃어 무기력한 화자가, 세상의 슬픔을 노래하는 애도를 추구하는, 멜랑꼴리의 수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짧은 수기답게, 아포리즘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아포리즘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아포리즘은 주체가 객체를 올바르게 보려하는 철학 에세이인데, 바르트는 극도로 멜랑꼴리에 젖은 상태라 아포리즘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지식을 목적으로, 특히 바르트의 철학에 관해 읽는 용도로는 부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는 적절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나의 경우 아직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루카치가 소설을 '선험적 고향상실'로 이야기했는데, 이 에세이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렇게 읽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는 연습으로 말이다.


바르트의 메모에서 처럼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에 관해 성찰하거나, 선험적으로 거쳐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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