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곰돌이 Dec 25. 2023

잔존하는 한 꺼지지 않는 민중의 영웅서사

영화 <알제리 전투> 감상

 잔존하는 한 꺼지지 않는 민중의 영웅서사 영화 <알제리 전투>     

 민중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영웅 신화와 어긋난다. 조지프 캠벨이 정리해둔 신화 분석서 <천의 얼굴을 한 영웅들>에서는 영웅 서사에서 영웅의 여정을 12가지 단계로 구분한다. 일상세계, 모험에의 소명, 소명의 거부, 정신적 스승과의 만남, 첫 관문의 통과 등 전영웅 단계에서 펼쳐지는 서사가 있지만, 민중 서사에서는 평범한 개인이 특정 사건을 바탕으로 인생의 코페니쿠스적 전환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영웅적 사건이 없다. 장발장에서 신부의 용서를 받은 장 발장처럼, 민중 서사의 주인공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각성한다.

 영화 <알제리 전투>에서 주인공 알리는 거리의 불량배로, 감옥에 수감된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사형 전 알제리 독립을 외치다가 죽은 독립 투사를 목격한다. 이 계기는 불량범 알리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사건이다. 5개월 후 감옥에서 나온 알리는 본격적인 투사가 된다. 죽음이 한 사람의 인생의 인생을 전환한 것이다. 조금의 정신분석을 곁들이자면, 실존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불량배 알리가 감옥에서 알제리 독립을 호소하는 투사의 외침에 실존의 의미를 찾은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갈망하던 실존의 해답을, 알리는 알제리 독립에서 발견한다. 자연스럽게 민중 서사의 주연이 된다. 다만, 섬세한 내면 묘사보다는 단지 알리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연출 방식이 조금 아쉽지만, 오래된 고전 영화임은 고려해야 할 듯 싶다.


 알제리 전투에는 알리를 주연으로 했지만,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리더 자파 및 핵심 네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투쟁하는 알제리 인민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영웅 서사와 달리,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프랑스와 맞서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알제리 투사들의 피로 그려낸 흑백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겠다. 히잡을 쓰며 작은 가방에 폭탄을 운반해 저항하는 여자 투사들, 신문 호외를 뿌리며 경찰의 스피커를 뺏어 투쟁하는 소년 투사, 경찰과 총격전을 하다가 숨겨주는 민간인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저마다의 방식으로 프랑스에 맞선 투쟁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저항의 과정이 단지 람보처럼,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프랑스 공수 부대가 투입되어 대대적으로 소탕을 벌이자 주요 지도부들이 검거되거나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지도자인 알리 역시 최후의 항쟁을 벌이다가 죽는다. 이후 반란을 진압한 메튜 대령이 “촌충의 머리를 제거했군”이라며 자화자찬을 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투쟁이 일어날 것을 인지한다.


 이러한 예감은 3년 후 대규모의 알제리 봉기로 이어진다. 이불을 찢어가며 제작한 알제리 국기를 들고 독립을 외치는 민중들의 분노는 알제리 전역을 뒤덮는다. 군인들이 충격을 가하고, 탱크로 진압해보려고 해도 낮밤을 가리지 않는 민중들의 외침은 계속된다. 이러한 저항의 목소리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이 <반딧불의 잔존>에서 말하는 반딧불의 불빛이다. 프랑스 군대의 서치라이트처럼 강렬하지 않을지라도, 은연중에 빛을 낸다. 반대로 혁명적 조직이 없다면, 반딧불이들은 각자 도생했을 것이다. 아무리 민중 서사일지라도, 선진적인 의식을 갖춘 민중들을 이끌 혁명적 조직이 필요하다. 반딧불의 빛을 모을 조직이 없다면, 그대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이 없다면, 알제리 민중들은 봉기할 수 있었을? 분노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깊은 좌절로 이어진다. 반대로 분노하되, 희망이 잔존한다면 불씨는 급속도로 커져 화염이 될 것이다. 혁명조직은 촛불 같은 존재다. 스스로를 태움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엠페도클레스 같은 존재자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조직에 동참하는 것은 평범한 인생에서 유일한 실존적 의미를 찾는 일, 민중의 서사 속 영웅의 여정을 걷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민해방전선의 저항을 보자하니, 팔레스타인에서 저항하는 하마스 전사들이 생각난다. 이스라엘이라는 강탈국가에 맞서, 한 번 뿐인 인생을 걸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이야말로 21세기의 영웅들이자, 민중 서사의 주인공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들처럼 영웅적 전사들이 될 수는 없겠지만, 친미 국가인 한국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규탄하는 여정에 함께함으로써 민중 서사에 함께 하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혁명의 수수께끼 같은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