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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Jul 24. 2023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서평

1.고전과 마주하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21세기에 실존주의는 유효한가?     


 무더운 여름, 잔인한 햇볕을 맞으며 도심을 걷고 있으면 문득 ‘나는 왜 여기있는가“와 같은 생각이 든다. 인간이 도대체 무엇이고, 인생이 얼마나 의미 있으면 무더운 햇빛을 맞으며 살아가야 하나와 같은 실존주의 질문은 기후 위기 시대, 미중 갈등 시대, 자본주의가 끝을 향해 발악하는 시대에 과연 유효한 것인가? 이런 질문은 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활성화 되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당시 프랑스 실존주의를 너머 철학에 중심에 있던 사르트르의 강연 주제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책으로 만든 이 책도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구토>>, <<존재와 무>> 등으로 인해 이미 문학계와 철학계에서 화두가 된 지식인이었으며 마르크스주의자와 기독교인들에게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특히 실존주의에 대한 왜곡과 올바르지 못한 이해도 심각했다. 좌파 진영에서는 부르주아적인 명상철학이라고 비판을 받았고 그 외에도 정적주의, 비관주의, 반인문주의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강연에서 ’왜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인지 강연한다.     

 앞에서는 실존주의를 개론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초반부에서는 실존주의에서 가해지는 비판을 설명한 다음 자신의 실존주의 철학을 설명한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차이, 기본 개념인 ’불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테제‘를 설명한다. 다음 부분에서는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을 반박한다. 그는 실존주의 윤리적 측면인 앙가주망(사회참여)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그 동안 실존주의가 정적주의 무관하다고 반박하고, 주체주의(subjectism)에 근거한다는 사실과 이와 관련된 비판을 반박한다. 특히 실존주의가 독단적이지 않냐는 비판에 ’인간은 자신의 도덕을 선택하며 스스로 만들어져간다. 또 환경의 압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느 하나의 도덕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을 오로지 앙가주망에 비추어서만 정의한다‘라며 반박한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결코 인간을 절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힘을 쏟는, 무신론이 아니라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실존이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 못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 자신을 되찾아야 하며, 또 이 세상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주장을 실존주의는 낙관론이자 독트린이라고 정리한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강의록이고, 반휴머니즘적 실존주의 성향이 강했던 <<구토>>와 마르크스주의 성향이 강해진 <<변증법적 이성비판>>사이에 있는 저서로, 그의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잇는 경계에 있는 도서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자답게, 특유의 독창적인 용어가 독해를 어렵게 한다. 사물의 존재를 의미하는 즉자, 의식의 존재를 의미하는 대자, 대자가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실존‘, 인간이 이 세상에 내던진 존재라, 스스로를 던짐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는 ’기투‘ 등 그의 용어는 심오하게도 느껴진다. 그렇지만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러한 독보적인 용어는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배울만한 사르트르의 핵심 개념은 기투의 방식으로서의 앙가주망이다. 다른 실존주의의 원류가 되는 철학자들-쇼펜하우어, 니체, 도스예프스키, 초기 하이데거-들의 관념론적인 생철학에 비해 사르트르의 앙가주망만큼은, 21세기에 사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태도이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어긋나는 부분(기본적으로 토대가 하이데거를 계승했기에 관념론적이라는 크나큰 문제) 단점인 ’인생론‘을 매우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개념, 특히 절망이나 우연 같은 개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공산주의의 경직성을 피해, 실존주의라는 윤활유를 제공하려고 한 사르트르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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