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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Jan 09. 2024

4.내게서 피어나는 무한한 꽃, 《무한화서》

불행한 책읽기

내게서 피어나는 무한한 꽃, 《무한화서》

화서花序’란 꽃이 줄기에 달리는 방식을 가리켜요. 순우리말로 꽃차례라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성장이 제한된 ‘유한화서’는 위에서 아래로, 속에서 밖으로 피는 것이고(원심성), 성장에 제한이 없는 무한화서는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피는 것이에요(구심성).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대로 나아가는 시는 ‘무한화서’가 아닐까 해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니까요.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무한화서》를 읽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교에서 강연했던 시론들을 아포리즘으로 묶어낸 책이다. 이성복 시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아포리즘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시인 중의 시인이라고 불리며 문창에서 시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읽어야하는 이성복 시인의 작품들이지만, 나는 그의 시집보다는 아포리즘집이 인상 깊다. 시인의 산문에는 시의 꿈이 담겨있고, 그 산문은 시보다 접근하기 쉬우면서도 시의 세계로 안내해준다.


《무한화서》는 크게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진다. 언어,  대상, 시, 시작, 삶인데 유의미한 분류는 아닌 것 같다. 모든 장마다 시를 이야기하며, 시를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


사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수업을 들으면, 현직 시인인 교수들에게 들을 수 있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에게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언어로 표현되며 언어는 묻고 상스러운 것이지만 우리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성복 시인은 시에 대한 다양한 비유를 하지만, 결국 그에게 시는 몸으로 쓰는 것이다.


이성복 시인에게 시는 내가 피우는 것이 아닌, 내게서 피어나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비유를 들며 시에 관한 테제를 말하지만, 시는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시작법과 시적 상상력은 하이데거와 바슐라르 생각이 많이 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하이데거의 시학과, 상상력의 혁명을 주장한 바슐라르를 혼재되어 있다. 그에게 문학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소명을 수락하는 것이고, 시 쓰기란 자기 성장의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시를 연애로 비유하며 나오려고 하니까 못 빠져나온다고 말한다.


모든 아포리즘이 그렇듯, 짤막하지만 무겁다. 결국 시를 통해 인생을 말한다. 아직 이 시론을 완벽히 체화하지 못 했으니, 앞으로 시를 쓰다가 막히면 다시 꺼내 읽어보며 체화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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