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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Dec 12. 2021

식사수발일기02. 당근 김밥과 배춧국

당근도 제철이 있는데? 나의 제철은 언제였을까.


제철 : 알맞은 시절


겨울이 되면서 부쩍 맛있어진 식재료가 있다.


그건 바로 당근과 배추.


확실히 주부가 되었다고 느끼는 건 내가 식재료의 제철을 파악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다. (난 프로다.라는 근자감이 든다고 할까나) 예전에 외식을 자주 하고 했을 때는 미각이 마취된 건지 (?) 채소의 단맛을 깊이 알 수 없었는데 , 확실히 집밥을 오래 해서 먹으니 각각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들을 알게 되었다. 연근을 쪄서 간장에 찍어먹을 때면 , 신랑은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며 '무맛'이라 하지만 내가 먹는 연근은 부드러운 단맛과 함께 아삭 거리는 식감에 입이 참 즐겁다. 이토록 사람의 입맛은 길들여지기 나름인가 보다.


삼시세끼 아이의 밥을 챙겨주면서 늘어난 스킬  독보적인  하나는 바로 '김밥' 마는 기술이다. 아직 그렇게 완성형의 모양은 아니지만 과거의 김밥을 생각한다면.. ..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림에서 당근과 배추를  왔다. 그러므로 저녁엔 따듯하게 배춧국을 끓이고 당근 김밥을 말아봐야겠다.




동치미당근김밥

이 무렵 김밥에 종종 김치를 넣고 김밥을 싸 먹는다. 당근이 무척 달고 , 김장김치를 하면서 곁다리로 담근 동치미와 알타리가 맛있게 익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함께 넣어 말아먹고 있자면 분명 배가 불러 들어갈 자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려보면 한 줄을 다 먹게 되는 그런 맛이다.


당근에는 비타민A가 풍부하기 때문에 당근을 섭취하면 야맹증을 예방하고 발육을 촉진할 수 있다. 또한 베타카로틴이 많아 암 예방에 좋은데 , 이 베타카로틴은 껍질에 많이 들어 있어 가급적이면 무농약 이상의 당근을 구입하여 잘 씻은 뒤 껍질까지 먹는 것이 좋으며 당근의 세타카로틴은 식초와 만나면 파괴되기 때문에 가급적 식초를 사용하지 않는다.


 당근을 잘 씻어서 채를 썬다. 껍질을 까는 필러같이 생겼는데 사이사이 칼날이 들어있어서 채를 쳐주는 필러가 있길래 냉큼 구매해서 써보니 가끔 이렇게 김밥을 말거나 계란말이를 할 때 참 편하다. 당근에 소금을 뿌려 잠시 두고 , 그 사이 밥에 양념을 한다. 생들기름과 소금 그리고 깨를 듬뿍 갈아서 넣어준다. 깨는 그냥 먹는 것보다 갈아서 먹어야 좋은 성분들이 잘 흡수된다고 한다.


 잘 익은 동치미나 혹은 알타리를 꺼내 두고 밑반찬 중에 넣고 싶은걸 골라본다. 나는 집에 우엉 조려 둔 게 있어서 꺼내왔다. 김을 펴고 밥을 펴준다. 그리고! 집에 상추가 있다면 상추를 펴주고 (없음 그냥 야채들을 올린다)  상추 위에 당근 우엉 김치를 차곡차곡 올려준다. 가끔 덜 바쁜 날엔 달걀을 넣어준다. 언제 달걀지단을 부치니.. 애 하나가 뒤에서 울고 바짓가랑이 잡고 있는데.. 상추를 먼저 돌돌 말고는 그대로 그위에 김밥을 돌돌 말아 싸준다. 애들 이불 놀이하는 것처럼. 돌돌돌. 상추로 한번 말아주고 김밥을 말면 안에 재료들이 자리 이탈하는 일이 줄어들어 김밥이 조금 더 곱게 싸인다.


 김 끝에 밥알을 몇 개 붙여주면 착-하고 마무리가 잘 될 거다. 자 그럼 이제 김밥을 잘라야 하는데 너무 콰직 자르면 안의 내용들이 밑으로 따라오면서 터져버릴 수 있으니 칼에 기름 살짝 묻혀서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사사사삭 빠르고 경쾌하게 잘라준다. 사사삭.



배춧국


 아 , 김밥을 싸기 전에 배춧국을 먼저 올려놔야 한다. 그래야 김밥 마는 동안 충분히 고아져서 배추 단맛이 국물에 잘 베이니까.


배추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칼슘과 철분, 아연도 많이 들어있어 겨울철 면역력을 향상시켜 준다.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 좋으며, 신장이 약해져 눈이 침침하거나 어른거리는 노화현상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위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고 폐 기능을 좋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 배추보다 유기농 배추의 경우는 항암 물질인 카로테노이드가 일반 배추보다 2배 가까이 많이 들어 있어 항암 효과가 월등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배추를 고를 때는 묵직한 것이 좋고 , 뿌리 쪽은 자른 단면이 하얀 것이 좋고 속은 노란 것이 맛이 좋다. 겉잎은 짙푸른 색과 흰색이 선명해야 싱싱한 배추다.
더불어 된장은 발효음식이라 면역력, 항암, 노화방지, 변비, 골다공증에 굉장히 좋지만 ,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된장들은 외국산 콩에 단일 종균을 묻혀 배양실에서 집중적으로 배양한 뒤 밀가루에 섞어 완성하게 된다.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이 재래된장과 비슷한 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주일 정도의 기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긴 기간 발효를 거친 된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수입 밀가루는 농약 및 방부제에 오염이 되어 있고 미국에서 수입하는 콩은 GMO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정제소금, 화학조미료, 방부제가 가량 포함된다.


이런 저러한 이유로 집에서 푹 끓인 배춧국은 제철의 배추에 우리 콩으로 발효와 숙성을 거친 된장이 만났으니 겨울철 '보약'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의 배춧국은 초등학생도 끓일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배추를 잘라 물에 담가 세척한다. 냄비에 절반 이상을 가득 넣는다. 배추가 아무리 많아 보여서 두려워 마시길. 푹 고아지면서 분명 후회를 한다. '아 배추 더 넣을걸'. 냄비 찰랑찰랑하게 물을 넣는다. 파도 하나 썰어 넣는다.


 점화. 강불로 끓여준다.


 된장은 일단 두어 숟가락 넣는다. 국간장도 두어 숟가락 넣는다. 팔팔팔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춰주고 푸욱 끓여주면 된다. 물이 좀 줄어들 무렵 맛을 보고 간을 더 해주면 된다. 된장 맛이 약하면 된장을 더 넣고 된장은 맛있는데 뭔가 부족하다 싶음 간장을 더 넣으면 된다.


 오늘은 마늘 넣는 것도 까먹었는데, 신랑이 맛있다고 국을 세 번이나 리필했다. 희한하게도 배춧국은 다음날이 더 맛있어진다. 내일은 더 달아진 배춧국에 국수를 넣던 떡국떡을 넣던 해서 한번 더 먹어야지. 김장김치와 알타리를 곁들여서. 으 침 고인다.


 밥을 먹으며 '제철의 배추'를 찬양하고 있었는데 , 문득 '야채들도 제철이 있는데 그럼 내 제철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 삶의 제철은 언제일까. 언제였을까. 내가 나로서의 알맞았던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이라는 답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어린아이 둘을 길러내느라 가장 정신없고 잠도 못 자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는 요즘이 나의 제철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머리도 엉망, 얼굴도 엉망인데..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마 요즘의 내가 가장 '나'다운 이유에서 일거다. 이제는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있다. '나답다'라는 문장을 제법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던 기나긴 늦사춘기가 이제야 끝이 나는가 보다.


 어렸을 때 주양육자가 '엄마-외할머니-친할머니-엄마'로 격변했던 시기와 맞물려 초등학교 때 왕따를 좀 당했었다. 아무래도 그때 불안정 애착과 함께 관계의 어려움이 함께 찾아왔던 모양이다. 덕분에 고등학교 때 까지도 친구들과 관계 맺는 것이 참 어려웠었다. 타인에게 잘 보여야 그들이 날 떠나지 않을 거란 생각을 종종 했고 , 함께 놀았던 친구들과 헤어질 무렵 친구의 표정이 어두웠다면 집에 와서 그날의 대화를 '복기'해보기도 했다. 혹시나 내가 잘못한 건 없었을까.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 찌꺼기들은 삶에 남아 나를 휘저었다. 그런 강박적 생각은 졸업하고 바로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을 하고 나서 좀 옅어졌다. 의학적 판단에 의거하여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일들이 꽤나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환자+보호자+의사,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은 감사히도 내가 잘못한 것만 꾸짖으셨다.)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내가 뭘 잘못했을까 불안에 떨 필요가 없었다.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나 명확하게 티가나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다만 크게 혼날지 작게 혼날지 두려워할 뿐.. 그게 아닌 이상엔 불필요한 걱정이 없어졌고 점점 관계 사이에서 당당해졌다. 더불어 '아 , 타인에게 늘 잘 보여야 하는 건 아니구나'를 몸소 체험했던 것 같다.


하나 더 말해보자면 '취향'이라는 것도 크게 없었는데 주변에 친구가 많아 보이고 밝아 보이는 친구의 모습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그때는 그럴 의도는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에야 돌아보니 부단히도 따라 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까.


그때의 최선의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어렸던 나는 불안한 마음을 풀어낼 길이 없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들로 내 삶을 꾸려가고 있다. 내 취향으로 물건을 고르고 '나'다운 일들을 해나갈 수 있다.


곧 서른여섯의 나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에 취해 신랑에게도 물었다.

당신의 제철은 언제냐고.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매일'이 제철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제철'이라고.

가장 기쁘고 좋은 날이라고.


오..?


이것이 바로 연륜인가.

마흔을 넘은 신랑의 속은 여전히 알다가도 모르겠다. 멋있긴 하네.



덧,

다음날엔 배춧국이 더 달아져서 그대로 밥을 말 수 밖에 없었다. 운명의 데스트니랄까.



* 식재료 참고문헌 : <친환경 음식백과/최재숙 (에코생협 상무이사) , 김윤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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