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수봉 Jul 08. 2022

거지 같은 기분이 나아지도록.

우울증 치료 100일 , 지금도 우울함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냥저냥 괜찮은 날들이 이어졌다.

우울증 치료는 생각보다 "나름" 순조로웠으나.. 생각지도 못한 복병! 생리 전 증후군으로 바닥을 치고는 복용 중인 노르작 캡슐의 용량을 10mg에서 20mg으로 늘렸다. 그것 때문인지 이번 달에는 생리 전 증후군으로 인한 우울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상스럽게 아이에게 화가 불쑥 나는 것 같아 이상해서 달력을 보니 생리 5일 전이었다. 그 정도로 가라앉는 느낌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버럭 화가 올라와도 화에게 먹히는 것이 아니라 불씨가 빨리 꺼지기도 했다. 지인들이 내 안부를 물을 땐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이 이어지고 세상은 아름다우며 너도 이상하면 병원을 가라며(?) 병원 홍보에 열을 올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작스레 아침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다시금 우울감의 늪으로 들어갈 것 같은 날이 3-4일 이어지기 시작했다.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기분이 너무 거지 같았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무력한 날들이 다시 찾아올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최근 며칠을 곱씹어봤다.


(TMI 입니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내용입니다 ㅋㅋ)

 6살 1호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친구들과 놀고 싶다며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때에 맞춰서 아는 선생님께 반반의 확률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냐는 제의가 들어왔었다. 뭐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하고 또 검색을 해서 몇 곳을 추리고 신랑이 쉬는 날마다 상담을 다녔다. 그리고 괜찮은 곳에 대기를 걸었으나 인원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아서 다시 검색과 상담의 과정을 거쳤다.


 비가 많이 오던 날 갔던 마지막 어린이집에서 원장님과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고 이곳이면 괜찮을 것 같아 신랑과 아이와 가족회의를 했다. 그리고는 당장 내일부터 가기로 했다.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고 아이에 대해 또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급하게 몇 가지를 샀다.


 다니고 있던 태권도 학원에는 직접 찾아가 정리를 했고 , 미술학원엔 연락을 드렸다. 다음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는 혹시나 중간에 연락이 와서 아이를 데려가라 할까 싶어 집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나? 괜찮나? 영상 통화하고 싶다.. 궁금해 궁금해!!! 라며 마음 졸이며 있다 보니 벌써 5시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괜찮았나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응원하고 싶어 롤케이크에 초도 꽂아줬다. 아이의 첫발내딛는 이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음 하는 바람을 가득 담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고 오늘의 일들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다.

 

 이제는 정말 내 품에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우리와 형성했던 단단한 애착관계를 발판 삼아 무리들 사이로 들어갔다.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품에 안고 '어야-어야' 하는 게 아닌 '응원'과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사실이 내심 섭섭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우리 아가가 언제 이렇게 큰 걸까. 발만 쑥-큰 줄 알았더니 , 어느새 마음도 커있었구나.


 날은 계속 더웠고 습했다. 얼마 전에 넘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다쳤는데 며칠이 지나도 뻐근하고 아파서 잘 돌아가지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아침에 투통과 이명이 시작되었다.


간단하게는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냈고 다니던 학원을 정리했다! 이렇게만 적으면 될 것을 이렇게 구구절절 적은 이유는 마음에너지를 많이 사용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타인을 만나고 , 그 만남의 과정에서 적절한 말들을 골라 이야기를 하며, 하고 싶지 않은 말들엔 웃으며 좋게 돌려 말해야 했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내 아이의 감정을 살펴야 했다.


 나는 눈치가 빠르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말들을 잘 캐치하기도 하며 필요한 걸 적절하게 준비를 잘하는 편인데 , 그저 이런 일들을 잘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여기에 많은 마음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니 병원에서 퇴근하고 집에만 오면 널브러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저 몸이 힘들었다기보다는 마음에너지를 거의 전부 써내버리고 오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는 에너지 충전 차원에서 그저 누워있었던 것 같다.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하고 싶어 짐을 챙겨 친정으로 갔다. 나의 비빌 언덕. 날이 무더웠고 아이들은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잘 시간이 지나 집에 돌아오는 길, 잠이 들었어야만 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눈을 반짝이며 조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인내의 끈이 뚝-끊어지는 것 같았다. 간당간당하던 마음에너지가 고갈되어버렸다.


 큰 일은 없었지만 감정 소모가 많고 신경 쓸 것들이 많았던 날들이라 에너지를 채우기 도전에 고갈되어버렸나 보다. 그래 , 그래서 요 며칠 다시 우울증의 증상들이 튀어나오려고 했나 보다. 문득 , 선생님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맹수봉 씨 스스로는 본인이 힘들다는 걸 알아주시고 다독여주셔야 해요. 보상을 해주셔야 해요"


그 말뜻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타인에 비해 마음에너지가 적던지 혹은 마음에너지 고갈 속도가 빠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분명한 건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나는 한정된 마음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배려한다 했던 행동들이 나를 갉아먹고, 마음에너지가 고갈되어버린 나는 결국엔 무척 우울해지거나 분노할 테니.


이런 생각이 오가는 중에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무척 덥고 습했던 날 신랑 또한 일하면서 많이 지쳤을 터인데 별것 아닌 것에 나는 예민해졌고 , 나의 예민함을 불편하게 받아들인 신랑과 약간의 언쟁이 오고 갔다. 별것 아닌 것들에 서로 생채기를 냈다.


엉망이다.


심호흡을 했다.

아주 깊고 길게.


조금 진정이 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줬다.


"수고했어 ,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여기저기에 마음 쓰느라 고생했어. 원만하게 상황들을 굴러가게 하려고 무척 애썼어. 그러니 두통에 이명이 오고, 감정이 날카로워진 건 절대 이상하게 아니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그럴 수 있어. 이젠 마음에너지가 이렇게까지 고갈되기 전에 알아차려줄게. 그럼 훨씬 나을 거야. 괜찮아. 더 괜찮아질 거야"


내가 나를 다독였다. 책에서 읽었을 땐 이게 무슨 오글거리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막상 생각해보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니 나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는 게 나쁘지 않았다.


감사일기를 쓰고 , 신랑에게 편지를 쓰고는 샤워를 했다.

그리곤 재밌는 걸 한편 보면서 수고한 나에게 피자에 맥주로 위로를 건넸다. 수고했노라고.



왠지 내일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 거지 같은 기분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며칠 뒤, 병원에 가던 날이었다.

최근의 이야기들을 선생님께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1. 날 괴롭히던 생리 전 증후군이 없어진 것에 대해


"ㅇ_ㅇ 오!! 그렇게 효과가 좋으셨다고요? 보통 그렇게까지 모를 수는 없는데 참 잘됐네요"


2. 마음에너지가 고갈되었고 , 내가 그것을 알아주고 다독여주고 피맥을 한 것에 대해선


"ㅋㅋㅋㅋㅋㅋㅋㅋ(엄청 웃으심) 내과적으로 피맥을 권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괜찮다고 생각은 해요. 왜냐면 저도 정말 힘든 날은 교촌을 시키거든요 ㅋㅋㅋㅋㅋ. 그렇게 또 한고비를 넘기셨다니 잘하셨어요"


'고비'라고 표현해주셨다.


고비
어떤 일이 되어 가는 데에서 매우 어려운 순간이나 국면.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타인의 입장에선 이런 걸로 뭘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 정말 나에겐 무척이나 어려운 날들이었다.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감정들임에도 선생님의 '고비'를 넘겼다는 말이 무척이나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더불어 재택근무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일하면서 즐거웠던 적도 없고 내가 너무 소진되어버릴까 걱정된다 이야기를 건넸다.


"개인적인 욕심으론 1-2년 정도 더 있다가 하면 좋겠지만 , 워라밸이나 돈 그런 목표가 있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정답은 없고 선택은 맹수봉 씨가 하시는 거지만 , 예전엔 백업(약)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면 지금은 백업(약)해줄 수 있는 것이 있으니 해볼 만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게 ,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봐야지.

거지 같은 과거의 기분이 되풀이될 거란 두려움을 떨치자.




매거진의 이전글 낙관성 테스트와 스트레스 해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