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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Jul 13. 2022

우울한 내게 위로가 되었던 말들


얼마 전에 진단서를 제출할 일이 있어서 선생님께 요청을 했다.

손에 들린 진단서를 통해 상세한 병명과 코드를 처음 봤다.



"중증도 우울증"

질병코드 F32.1



낙인처럼 느껴졌다. 넌 그런 사람이야 탕탕탕.

정신과의 진입장벽을 높게 한다는 그 이름도 유명한 F코드 (C로 시작하는 것은 ‘암’이라고 한다)

F32 : 우울 에피소드 Depressive episode


전형적인 경도, 중등도, 중증 우울병 에피소드에서 환자는 기분의 저하, 정력 감퇴, 활동력 감소를 받게 된다. 흥미, 즐거움이 감소하고 집중장애와 최소한의 노력에도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며 식욕이 없고 자부심이나 자신감이 결여되고 죄책감이나 가치 없음도 느낄 수 있다. 기분저하의 정도는 매일 다르며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흥미나 즐거운 감정의 소실, 평소보다 몇 시간 먼저 일어나기 등의 소위 “신체적” 증상이 동반된다. 우울병은 아침에 더 심하고 뚜렷한 정신운동 지연, 안절부절, 식욕 소실, 체중감소, 성욕감퇴가 동반될 수 있다. 위와 같은 증상의 심도와 수에 따라 우울병의 에피소드는 경도, 중등도, 중증으로 나뉜다.


F32.1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 환자는 보통의 생활을 계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우울증 진단 후 치료를 해가며 정신을 되찾고(?) 서둘러했던 일은 놀랍게도 자주 연락을 하던 지인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그간 알게 모르게 나의 우울증 증상들로 인하여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은 찝찝함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좋지 않은 표정들과 자꾸만 시선을 피했던 것은 네가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랬던 것이었노라고.


위로를 받고자 말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 말을 하는 과정에서 위로가 되었던 시간들도 있고 또 음? 뭐지??????? 싶었던 물음표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신랑은 그냥 나를 받아들여줬다. '감기 걸렸으니까 약 먹는 거라고 생각하지 뭐- ' 라며 무덤덤히 이야기를 해주었던 게 너무 고마웠다. 특별하지도 이상하지도 않게 그냥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울증은 왜 "의지 없음"과 연결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전업주부이지만 이전에 고혈압/당뇨 관련해서 강의도 하고 상담도 진행했었는데 방문하는 환자들에게 늘 운동/식이/약 복용을 강조했었다. 혈당을 낮추기 위해 당뇨약을 먹기도 하고 직접 인슐린을 주사하기도 한다. 인슐린이 부족해서 (혹은 저항성이 생겨서) 당뇨가 오는 거랑 뇌 호르몬 불균형으로 우울증 오는 게 뭐 다르다고? 뇌 호르몬을 안정적으로 맞추기 위해서 뇌 호르몬 약을 먹는 것이!!!! 왜!!!! 그렇게 이상하게 치부되어야 하는 것일까? 당뇨환자들에게 "으이그! 의지가 없으니까 당뇨가 오는 거지!"라고는 말도 하지 않을뿐더러 "으이그! 의지 부족으로 그렇게 혈압조절이 안되는 거예요!!!!" 이런 말 또한 어불성설 아닌가?


하아 , 의지 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받기엔!!!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도 풀어볼 겸 겸사겸사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SNS으로 알고만 지내던 분이셨는데 어려우셨을 텐데 본인의 우울과 공황 이야기를 하시며 내가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날 응원한다 댓글을 달아주셨다. 정말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 J 에게서 손편지가 도착을 했다. 손편지를 받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나에게 작은 기쁨이 되길 바란다며 꾹꾹 펜을 눌러 적어 보내 주었다.


친구 C 에게서 잊을 만하면 연락이 와서 괜찮냐 안부를 물어준다. 어느 날엔 갑자기 아이스크림 쿠폰을 보내주면서 산책하면서 하나씩 사 먹으라고 했다.


오랜만에 전화 온 지인 H는 같이 약 먹는 사이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진한 정신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연락이 끊겼던 L언니에게는 바로 전화가 왔다. "야 너 무슨 일이야!!!" 라며. 통화한 지가 한 참되었던 것 같은데 한결같은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주었다.


그중 최고는 친구 D였다. 오랜만에 전화를 했고 다짜고짜 "나 우울증이래 - "라고 질러버렸다.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D. 본인 또한 이래저래 한 이유로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야 , 자살률 1위인 나라에서 정신과 약 먹는 게 대수냐? 자살 안 하고 약을 먹고 치료받는 게 사실 다행 아니야?" 라며 이야기해서 서로 한참을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을 먹으며 현타가 오는 날이 간혹 있는데 , 그런 날은 친구 D의 말을 되뇐다. '그래 죽지 않고 약 먹는 게 더 다행인 거지 뭐'. 그리고 친구 D와는 종종 통화를 하는데 "살아있니?"라는 인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시댁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 했지만 어쩌다 보니 어머님이 알게 되셨다. 아이 둘을 데리고 신랑이 시댁에 갔던 날 병원을 다녀왔다. 선생님은 치료가 순조롭다 이야기하셨고 , 나 또한 괜찮은 기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어머님께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했다.

"어머님 , 아이 둘만 보내서 죄송해요. 그리고 어머니 저 많이 괜찮아졌대요. 지금처럼 약 잘 먹고 하다 보면 더 나아질 것 같아요"

그러자 어머님은 잠시 침묵하시더니 "고맙다" 고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고맙다'는 말이 낯설었다.


내가 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건네 보았는데 참 낯간지러웠다. 우리 집은 11층이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 창문을 열고 아래를 오랫동안 보지 않았고 , 아이를 안고 서있지 않았다. 나도 내가 못 미더웠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잘 견디고 살아내 줘서 고맙고 , 열심히 치료의 과정을 밟는 내게 고마웠다. 더 괜찮은 날들을 살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혹여나 또 이런 겨울이 오더라도 한번 겪었던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 대비를 짱짱하게 할 수 있으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아마도)



종종 악의 없는 말로 찔린 적이 있었는데 단연코 그중 최고의 말은 "힘내.. " 그리고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해" "편해서 그래"라는 이야기였다. 악의가 없는 말이기 때문에 흘려보내고 싶어도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벗어나고 싶어도 참 어려웠다.


몇십 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있는데 오랜만에 카톡으로 연락이 돼서 서로 근황을 묻다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노라고 했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서로 슬프고 기쁠 때를 공유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툭하고 이야기가 나왔다. 괜찮냐며 짧게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게 무슨 관종 심리인가 싶지만서도 며칠이 지나도 전화를 주지 않는 친구에게 조금 삐친 것 같다. 내심 섭섭했다.


신랑에게 이야기하니 복잡하게 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럼 당신이 그 친구에게 카톡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을 들었다. 그러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곧장 찾아갔겠지. 좋아할 만한 간식거리 싸들고.


서른 중반을 넘어가면서도 이런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 철이 들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우울증을 겪어가며 , 타인의 아픔을 어떻게 공감해주어야 할지 배워간다.



경청(傾聽)이라는 단어의 ‘경’자는
 기울다, 란 뜻이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음 문장을 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사람을 뜻하는 ‘人(인)’이라는 글자도
서로에게 기울어져 기대어 선 모양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술잔을 기울이고  
심혈을 기울이고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그러다 0의 기울기가 되어 눕게 되는 것이 한생이려니 합니다.

-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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