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가정이다. 그냥 대한민국 여느 가정들 같았고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냈다. 어쩌다 보니 과호흡이 여러 차례 왔던 동생은 공황장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우울증 점수도 좀 높게 나왔는데 공황장애로 인한 우울도 점수가 높은 건지 아니면 정말 우울증으로 인한 건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괜찮은 병원을 찾아봐주고 안부를 물으며 가끔 치즈케이크나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정도였다.
그리고 몇 달 뒤,
근심하는 마음으로 동생에게 병원을 알아봐 주었던 그의 누나는 그와 같은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는다. 그리곤 치료를 이어나간다. 시간이 조금 흘렀고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과적 증상을 말하고 약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게 퍽이나 자연스러워졌다.
“넌 따로 수면제 먹어?”
“넌 약 먹으면 무슨 기분이야?”
뭐 보통의 흔하고 흔한 남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다. 감정선이 비슷하기 때문에 따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대부분의 이야기들에 공감이 되고 힘들여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의 에너지가 크게 소비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쁘지 않다 생각을 했는데 , 어쩌면 우리 엄마에겐 마음이 좀 아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나도 남매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나의 아들과 딸이 나란히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다 내 탓 같고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크게 우리 엄마 탓은 아닌데 말이지.
그렇게 미안해할 건 아닌데.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동생이 일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갔다. 몇 달이 흘렀고 큰맘 먹고 친정엄마와 나의 꼬마 둘을 데리고 동생을 보러 갔다. 보통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운전한 것 같지만 본인은 장롱면허 소지자이기 때문에 엄마가 장거리 운전을 하셨다 ㅋㅋ(죄송..)
볕이 잘 드는 투룸에 고양이 두 마리와 살아가는 동생의 모습은 한결 나아 보였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정돈된 집은 동생의 마음이 정돈되어가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듣기 힘든 소리가 몇 가지 있던데 , 그중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아이들의 소리라고 했다. 사랑하는 나의 만 4세 아이와 18개월 아이 둘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생각보다 굉장히 파괴적이기 때문에 동생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응급약을 하나 삼켰다. 괜히 미안하네 ㅋㅋㅋㅋ. 그런데 나도 한알만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좀 벅찬 날이기는 했다.
나의 동생은 내가 기억하는 한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가장 오랜 시간을 놀아주었다. 이게 바로 약빨육아인가. 함께 밥을 먹고 무려 키즈카페를 함께 가주었다. 그게 그 친구에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기 때문에 고맙기도 하고, 치료를 받기 전에 비해 한결 나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키즈카페에 다녀오면서 동생은 딩크를 더욱 결심했다고 한다. 응원한다 너의 삶을 ㅋㅋ)
근처 사시는 이모, 이모부와 저녁을 먹고는 동생집에 짐을 풀고 아이들을 재웠다. 엄마도 장거리 운전이 고되셨었는지 금세 잠이 드셨고 고양이 두 마리만 신나서 날뛰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증이 있던 나는 치료를 받으며 수면제를 따로 복용하지 않아도 불면증이 많이 나아졌는데, 희한하게도 이 날에는 생리하기 2-3일 전이라 그런지 약간의 불면이 올라오기도 했고 낯선 곳이기도 해서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다가 동생에게 시선을 옮기니 자기 전 약을 털어 넣고는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수면제를 하나 달라고 해볼까도 싶었지만 수면제를 먹어도 선잠을 자고 몇 시간 못 자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옴싹 거리던 입을 닫았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여름밤, 바닥도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동생 옆에 가서 털석 누웠다. 침대가 어찌나 푹신하던지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서른여섯의 우울증 누나와 서른넷의 공황장애 남동생이 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른 넘은 남매가 한침대에 누워서 수다를 떤다는 것이 좀 웃긴 상황이긴 했지만 ,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장면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덥고 습했지만 묘하게 선선하던 선풍기 바람. 폭신한 베개. 그 폭신함 사이로 느껴지는 눅눅한 구미의 여름밤. 여전히 날뛰는 고양이들.
이야기는 끊어질 듯 말 듯 얇고 길게 지속되었다. 과거에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많은 것을 후회하는 나와 , 너무 열심히 놀아서 후회할 것이 없다던 동생. 비슷한 것 같다가도 또 너무 다른 나의 동생. 힘들면 약에 도움을 받으면 되고 , 또 괜찮은 날들은 그렇게 그냥 흘러 보내다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이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보다는 안정적인 날들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함께 겨울을 겪었고 , 겪어내고 있으며 , 앞으로의 겨울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동생의 존재만으로 힘을 얻어 또 오늘 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