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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Sep 07. 2022

이유없는 우울감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우울증치료 5개월 차.


평범한 날들이 지속된다. 장맛비가 굵게 내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제법 쌀쌀한 가을비가 내린다. 우울증 치료는 5개월을 넘어갔다.


우울증 치료는 순항 중인  같아! ‘라는 안도감이 들면 어김없이 고꾸라지는 날이 생긴다. 이유 없는 우울감이 불쑥 찾아올 때면 어찌해야  바를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름 우울증이 많이 나아졌다고 자부하고 있는 중이다.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있으며 아침에 눈을 떠서 기지개를 켜고 거실로 가뿐하게 걸어 나올  있었다. 아이들과 텐션을 높여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패턴이 생겼다. 하루 정도 괜찮게 지나가면 2~3일 정도 우울함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물론 치료 전과 같은 아주 깊고 깊은 우울함은 아니지만 , 무기력하고 감각이 무뎌졌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입장에선 어느 날엔 엄마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다가 또 다음날엔 같이 바닥에 누워 한없이 넋을 때리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의구심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볕이 좋았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도 하늘이 청명했고 반짝였다. 나의 다정한 오빠는 얼굴 표정이 왜 그러냐 물었다. 남이 보면 우리가 싸워서 썽이 나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카페에 가서 쉬다오라며 등을 떠밀어 줬다.  나의 귀여운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귀엽다. 요즘 더 귀여워진 것 같다. 이렇게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괜찮았던 날 , 오직 나만 이유 없이 썽이 나있었다. 무기력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세상 모든 것이 재미없었다. 입을 열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우울의 늪에 스르륵 들어가 누워있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 모든 완벽한 것들에서 나만 지워진다면 정말 완벽해질 텐데 지우개로 쓱쓱-’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존재가 없어지길. 그럼 더 완벽하지 않을까. 이렇게 우울한 엄마가 곁에 있는 게 아이들에게 더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오빠도 힘들지 않을까? 이렇게 반짝거리는 날씨가 나 때문에 흐려지는 건 아닐까. 가족들의 인생 오점은 바로 ‘나’인 걸까?


사실 이런 옅은 우울감은 혼자 살거나 , 신랑과 둘이 살기엔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고요하고 적막한 걸 좋아하는 취향이라 혼자서는 충분히 그 시간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과 살아가는 지금의 삶에선 ‘우울감'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불편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잘 놀고 싶어도 어렵다. 상황을 어렵게만 만든다. 혹시나 내가 모성애가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렁일 때도 있다. 책임질 수 없는데 둘이나 낳은 것 같아 미안스럽기도 하다. 모두에게.


도망치면 오빠가 잡으러 올 테니 도망을 가볼까?


‘아마 반나절도 안돼서 잡히겠지 ㅋㅋ 오빠 성격엔 날 잡으러 오고도 남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병원에 가보자. 이런 생각의 흐름은 위험 신호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 그렇고 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한 착각이고 , 사실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약용량이 아주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하셨다. 약을 더 추가한다면 감정의 폭을 더 줄일 수 있지만 되려 감정이 무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견뎌 보는 건 어떨지 물으신다. 약을 증량하길 원하냐고.


나 또한 약을 증량하고 싶지는 않지만 감정 조절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나의 친절한 선생님은 분명히 나아지는 중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고 , 지금은 중간 과정을 지나는 중이니 여기서 끝이 아니고 분명 더 나아질 거라 해주셨다. 혹시나 너무나 참기 힘들다면 전화를 주고 지금 먹고 있는 약 중에 폭세틴 캡슐을 하나 더 꺼내서 먹으라고 했다. 혹여나 약을 더 증량할 거면 폭세틴 캡슐을 기존 1개에서 2개로 늘릴 거라 하셨다.


얼마 전에 가족들과 식사를 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생의 생일이었고 다 같이 모여 몹시 비싼 한우를 먹으러 갔었어요. 사실 그날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사람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아 불참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을 오래 했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동생을 보는 자리라 나갔죠.


아이들은 점심을 대충 먹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 왔던 터라 아주 맛있게 먹었고 , 신랑은 원래도 고기를 좋아해서 다들 잘 먹었어요. 친정아빠는 흐뭇한 미소로 ‘너는 애들 굶겨다니니?’라고 물으셨어요. 다들 맛있게 먹고 계산은 친정아빠가 하셨죠.


다음날 아이 낮잠을 재우고 나왔더니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어요. ‘네가 생협에서 맨날 맛없는 고기 사 먹이다가 오랜만에 좋은 고기 먹으니 애들이 잘 먹은 것 같다. ‘라는 이야기에  ‘어제도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애들이 배가 고플만했고 그래서 잘 먹은 거다’ 답하니 아 그래?라는 짧은 답변과 함께 ‘내가 너 섭섭해할 만한 이야기 하나 해줄까?’라고 물으셨어요. 예전 같음 궁금해서 들어봤을 텐데 들어보면 정말로 서운해할 이야기 일 것 같아 거절했어요. 이미 충분히 힘든 마음에 그 섭섭함과 속상함까지 얹고 싶지 않았어요. 아마 섭섭한 이야기는 부모님 두 분께서 나누신 제 뒷이야기였겠지요. 우리 부부 또한 아이들을 재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니 당연히 두 분이 제 이야기를 하셨으리라 생각을 해요. 그러나 생각을 하는 것과 그걸 직접 듣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요.


다음날엔 이것저것 가득 담아 저희 가족이 먹을 것을 챙겨다 주셨어요.”


가만 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


첫째로는 우울감이 없고 괜찮던 날에 마음속에 무언가 감정적으로 탁- 걸리는 게 생기면 그게 맹수봉 씨의 감정선을 끌고 내려가는 것 같고, 둘째로 부모님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중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사랑을 받는 건가? 미움을 받는 건가? 이런 혼란감.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예를 들어 정반합이라고 하죠. 처음에 상대방의 좋은 모습을 보고 연애를 시작해요. 그리고 결혼을 하죠. 그리고 나면 단점이 엄청 보여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시간을 지나고 나서는 장단점을 모두 합쳐 그 사람을 온전히 인식하기 시작해요. 아마 부모님에 대해 '좋은분들'이라는 생각의 틀에서 불편한 것들을 인지하고 그걸 인정하고 틀을 깨어가고 있는 단계가 아닐까 싶어요. 이 단계를 잘 거치고 나면 분명 더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보세요. 생각을 거듭한다는 건 좋은 거예요”


아무래도 여전히도 나의 부모님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들임이 틀림없기에 자꾸만 내 감정이 건드려졌던 것 같다. 이제는 독립할 법도 한데 말이지. 내 안에 살고 있는 작고 어린 수봉이는 (내면 아이) 도대체 언제 성장할 것인지.. 아직도 독립하지 못한 채 그들의 무한한 애정을 갈구하는가 보다.


작은 이야기도 끊임없이 되뇌었다. 되뇌며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그러면서 좋은면들을 보는 시선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만 남게 되어 버린다. 왜곡된 생각은 왜곡된 정서를 낳는다. 그때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분명 좋은 분들인데 왜 부정적인 감정만 남은 걸까? 하며. 이걸 끊어내려면 아무래도 다각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들의 인간적인 면을 마주할 것. 불편한 감정을 부모에게 가져도 괜찮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나의 아이들 또한 ‘엄마 미워!’라고 할 때가 있는걸.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가 싫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너무너무 밉기도 합니다. 분노도 느낄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 감정을 두려워합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미워하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갖는 그 당연한 감정에 오히려 자신이 더 불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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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지 않겠다. 등등은 부모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기본적으로 '미움'이라는 감정이 있어요. 닮고 싶지 않다는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가 그 대상에 대해 내 마음이 '미움' , '싫어함' ,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부모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부모가 밉다', '부모가 싫다'라는 내 감정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너무 싫은 마음, 너무 미운 마음이 많으면 '부모'라는 사람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요. 미움과 분노에 지나치게 휩싸여 있으면 그들로부터 내가 받은 영향력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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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면 미워하는 감정을 가져도 괜찮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분노의 마음으로부터 도망가지 마세요. 그런 감정을 갖는 것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엄마 미원!" "엄마 싫어!" 하는 아이에게 너의 마음이 어떠냐고 물으면 , 아이들은 의외로 슬프다는 대답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한 엄마가 그 글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지셨답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미워하셨대요. 어머니를 미워하는 자신이 나쁜 사람 같다고 해요. 그래서 미워도 밉다는 말을 못 하고  그 마음을 꼭꼭 숨기셨대요. 그런데 글을 읽고 '내가 그럴 수도 있었던 거구나' ' 그때 내 마음이 슬펐던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엄마, 미워!"라고 말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지만,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하면 밉구나. 엄마가 미울 때 네 마음은 어때?"라고 물어봐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미워했던 '나'의 마음도 사실은 슬펐던 겁니다.

<오은영의 화해 중>


아이 둘을 낳고 무한한 우울의 늪에 있을 때 한없이 걱정을 해주셨던 것도 부모님 이셨지만 , 원래 애 키우는 건 힘든 거야. 다 그렇게 키웠고 너도 그렇게 컸어. 라며 나의 힘듦을 공감하는 것 같지만 일반화시키며 '나 지금 유난 떠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신 것 또한 부모님이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슬픔에 슬픔이 겹겹으로 쌓이게 하고 괜찮았던 감정을 한번씩 바닥으로 끌고 가는거였을까? 사실 별거 아닌 이야기들인데 기분부전장애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내게 우울증으로 한걸음 내딛게 해준 여러가지 원인들중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부족한 나 또한 부모가 되어놓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참 우습다. 내면 아이가 온전히 성장하여 오롯하게 독립된다면,  타인 특히나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야와 마음가짐이 달라지겠지. 어찌 되었든 이제야 부모님과 얽혔던 감정들을 마주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6살 된 아들은 종종 밤마다 악을 쓰며 운다. 다리가 아프다며 성장통으로 끙끙 앓는 걸 보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어 진다. 성장통을 겪는 아들을 바라보며 , 나 또한 마음의 성장통을 앓고 있노라 나를 위로한다. 극심하게 아픈 날도 있고 , 견딜만한 날도 있고.


be strong.


나는 해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 엄마가 된 '나'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것에 흔들리지 말고 , 우울감이 뒤엉켜 엉망인 순간에도 치료 잘 받으면서 견뎌내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걸 확신하자. 그리고 지금의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나’와 우리 가정을 사랑스럽게 꾸려가야지.


난 엄마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다.

살아내야지.



우울증 환자가 쓴 어떤 책에 그런 말이 있었다. 죽음을 계획하기도 하고 죽음 뒤를 상상하기도 하며 무력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 죽지 않고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건 그 사람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오늘을 살아내기로 결심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나는 정말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우울증은 내가 계속 혼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 실은 생각보다 내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지.


그들과 더불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다면 지금의 우울증은 미래의 내 삶에 에피소드로 남아질 것이라 조심히 예상해본다.


 복용중인 약 : 폭세틴 캡슐 1 + 에스벤서방정 50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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