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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Sep 14. 2022

우울한 마음이 말랑거려지면서 했던 일들

우울증 치료 170일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 몇 번이 지나고 나니 마음이 많이 말랑해졌다. 잔뜩 흐리고 어두워 돌처럼 딱딱했던 날들이었는데 어느새 말랑 콩떡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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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 감정이 또 어떻게 날 뛸지는 모르겠지만 , 일단 몇 주째 유지가 되고 있으니 전망이 흐리지는 않은 것 같다.


엉망이었던 8월의 감정일기


드디어 노란스티커가 나타난 9월의 감정일기. 선방하는 중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9월 12일 월요일.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름 싹싹하고 다정해서 병동 어르신들께 며느리 삼고 싶다며 종종 이야기도 들었었고 , 약을 팔아도 잘 팔 거라며 칭찬도 많이 들었었는데 왜 아버님 앞에만 서면 그렇게 작아지는지...ㅎㅎ


거기에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친한 사람들과의 연락마저도 버거워지면서 아버님께는 더욱 연락을 드릴 수가 없었다. 검색을 해서 통화버튼을 누르기까지 5초도 걸리지 않는 동작인데 그걸 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전에 현미찹쌀이 맛있다며 한 포대를 사서 보내주셨고 , 어머님과 갈비 드시다가 우리 생각났다고 포장을 해서 가져다주셨다. 차로 40-50분 걸리는데..


통화음이 얼마 가지 않아 아버님의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그간 너무 죄송했노라 이야기를 드렸더니 , 뭘 그러냐고 괜찮다고 하시길래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제가 (마음이) 좀 안 좋았어서 주변 사람들한테도 연락을 거의 못했었어요. 그러다 이제 상태가 좀 나아지고 정신을 차렸는데 생각해보니 아버님이 너무 섭섭하셨을 것 같은 거예요. 제가 너무 무심했죠. 죄송해요.


허허허. 아버님의 너털웃음으로 끝이 났다. 마음에 묶여있던 매듭 하나가 풀렸다.



그리고 다음날 , 1호를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고 2호와 도서관을 갔다가 집에 도착해서 간식을 먹고 치우고 있는데 엄마가 오셨다. 화사한 꽃 같은 웃음과 또 손에는 갈비가 가득 들어있는 냄비를 들고.


겸사겸사 왔다며, 마음이 울적해서 2호 웃는 게 보고 싶어 왔다고 하셨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밥을 지었고, 엄마가 가지고 오신 갈비에 시댁에서 공수해온 밑반찬을 꺼내서 함께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엄마는 2호의 허튼짓들을 보며 숨넘어가게 웃고 계셨다. 아이 낮잠시간이기도 했고 사무실 가셔서 처리할 일들이 많다고 하여 엄마는 금세 자리를 털고 가셨다.


그날 밤

아이들을 토닥이며 재우는데 , 울적하다 말하는 엄마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편지를 써서 전했다.




엄마 ,

오늘 왜 우리 이쁜 엄마의 기분이 울적했을까나.


이제 그만 울적함에서 벗어나자!라고 다짐을 하고 바로 그 울적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겪어보니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더라고.


울적함에 내가 휩쓸려 없어지지 않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틈틈이 하루 속에 채워 넣으려고 노력 중이야. 그래서 전기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전환을 하고 , 졸린 눈 비벼가며 이것저것 책도 읽고. 글 쓰는 것도 속에 있던 것들을 다 쏟아내니까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아 좋더라고.


엄마는 맨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기느라 바쁘지? 그래도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찾았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음식 , 좋아하는 노래 , 좋아하는 책 , 좋아하는 계절. 그런 것들을 하루에 조금씩 녹여내니까 울적함이 조금씩 융화되어가는 것 같더라고.


나는 붕어싸만코랑 찰떡 아이스 그리고 햄이 없는 피자를 좋아하고 , 고요하고 적막한 걸 좋아하더라고. 책도 좋고.


엄마 , 아내 말고 ‘이여사'가 사라지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어. 엄마랑 아내의 역할만 남으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들.. 그러니까 수동적인 선택들이 많아져서  점점 목이 졸리는 기분이더라고. 혹시나 엄마도 그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어쩔 수 없다’ 이야기하며  엄마가 엄마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

그래도 우리 엄마로 계속 있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내가 더 엇나가지 않았던 것 같아. 뭐 우울증 딸내미라 짐덩이 같고 마음에 근심 걱정을 줄 수도 있겠지만 ㅋㅋ 그래도 나 잘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걱정 말고 그저 응원만 해줘.

우울의 뿌리가 깊어서 중등도 우울증이고 , 생각보다 치료가 길어질 것 같대.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엄마는 속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참 다행이다 싶었어. 내가 게을러서 아침에 못 일어나고 비몽사몽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 삶에 의지가 없어 사라지고 싶고 버스가 사고 났음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니라 참 다행이었어. 그저 상처가 나면 피가 나듯 그렇게 좀 아팠었나 봐.



최근 나는 올해 목표도 정했어. 세상 모든 것 심지어 먹는 것에도 의욕이 없었는데 무려 목표가 생겼어. 정자세로 팔 굽혀 펴기 5개랑 턱걸이 1개. 그거 하면 오빠한테 만원 받기로 했어 ㅋㅋ 이런 것들로 차곡차곡 성취감과 행복함을 쌓아가고 있으니까 너무 염려 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봐!라는 말 참 많이 들었는데 , 그게 되면 사실 약을 안 먹지 ㅋㅋ.. 그래도 그게 잘 안됐는데 이제는 아주 조금씩 되고 있어.


내 우울한 감정은 내가 오롯하게 다 안고 갈 거야. 남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니까. 나도 이제 엄마처럼 최선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엄마니까. 그리고 우리 집 가정경제는 우리 부부가 잘 헤쳐나가 볼게. 요즘 가계부도 열심히 쓰거든. 그러니 엄마는 엄마의 날들을 더 괜찮게 꾸려갔으면 좋겠어. 젊었을 때부터 어깨에 짐이 너무 많았잖아. 동생도 동생의 삶을 잘 꾸려갈 테니까 그의 감정까지 엄마가 너무 끌어안지 않았음 해. 그런다고 그 친구가 더 괜찮아지는 건 아니니까.. ㅎㅎ


엄마,

얼른 엄마가 자전거를 타서 , 내년 봄에는 같이 자전거 탔음 좋겠다.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이서 자전거 타면 아이들이 종종 부럽다는 생각을 해. 내 기억엔 엄마 아빠랑 이렇게 자전거 타고 놀러 다녔던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근데 그럼 뭐 어때? 이제 하면 되지 뭐. 자전거 타고 팔당 가서 초계국수도 먹고  ,  북한강 스타벅스타서 커피도 마시자. 거기 봄에 벚꽃길 옆으로 라이딩 가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거든.


사랑하는 엄마 ,

엄마의 삶을 응원하고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오늘은 울적했으니 내일은 부디 괜찮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


아이가 노래를 하나 배워왔는데 ,


어려운 상황이나 형편 속에서도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태도~



그게 ‘기쁨’이래 ㅋㅋㅋ

나와 엄마의 삶에서 기쁜 날들이 지속되길 기도할게.


덧 , 엄마 더는 내게 미안해하지는 마. 어렸을 때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엄마가 했던 것들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엄마 최선의 사랑이었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정말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해.




이제 고작 36년을 살아간 내가 , 거친 풍파를 견디고 이겨낸 24살의 연상인 엄마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웃긴 모양새이지만 우울한 내가 울적한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이었다. 더불어 최선을 다해 엄마를 마주하고 마음에 있던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싶었다. 그게 내 최근의 마음 숙제였기 때문에.


사실 , 여러 감정이 얽힌 편지였다.


 엄마에게 회신이 왔다.


고맙다.

그냥 잠시 그러한 시간들이  순간 스치는 때가 있더라

너도 잘하고 있고

너의 동생도 본인의 몫을 위해 한 걸음씩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으네

나도 자전거 욜씨미배우려구

올해 목표, 이쁜 시온이가 알려준대로 발 올리고 브레이크 잡고 천천히 ㅎ

사랑한다

굿밤


(얼마 전 6살 아들이 할머니에게 일장연설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 왜 못해! 자전거를 이렇게 타! 발을 페달에 올려! 브레이크를 이렇게 잡고 천천히! 라며 ㅋㅋ)



속이 울렁거리더니 이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 , 묵은 감정의 해소가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한 달 전쯤 병원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닐 거라고. 좀 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분명 다른 결론에 도달해 있을 거라고.


거의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더 이상 친정에 발걸음을 해도 묵직한 마음의 돌덩이가 없다. 부모님에 대한 양가감정이 좀 해소되었고 이제는 내 발목을 잡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그렇게  안의 작은 ,

내면 아이는 이제야 사춘기 그 언저리를 지나고 있다.





아빠랑 동생이 없어서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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