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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Sep 17. 2022

아이가 아팠고 , 엄마가 보고 싶었다.

우울증 치료 173일


금요일 ,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숲 체험을 가던 날이었다. 아이는 놀러 간다며 연신 신나 있었다. 아이가 방방 뛰는 게 너무 귀여워 볼을 깨물고 싶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해버리면 썽을 내버릴 6살이라 쿨하게 인사를 해서 보냈다.



5시. 아이가 돌아왔다.


아빠와 동생이 데리러 갔었는데 아이는 울면서 돌아왔다. 아빠는 땀범벅이 되어있었고. 상황을 좀 살펴보니 , 아빠가 하원하는 차에서부터 안고 올라온 것 같았다. 처음으로 하원하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집에 다 왔다고 깨우는 선생님의 손길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너무나 엉엉 울며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 아이 아빠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안고 왔다고 했다. 아이 1 + 아이 2 + 킥보드 + 밸런스 자전거 이걸 팔 두 개로 이고 지고 끌고 와서는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내게 전화를 하지 왜 혼자 그러고 왔냐고 하니 "자기도 컨디션이 똥망인데 애들 데리러 오라고 할 수가 없었어"란다. 허참 , 내가 이렇게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 ㅋㅋ



여하튼 , 아이가 오랜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대충 손발만 씻기고 나머지는 따듯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는 어야 둥둥 안아줬다. 언제 큰 건지 이제는 번쩍 들어 안아주면 내 품에 쏙-들어오질 않는다. 남자의 진한 땀냄새도 나기 시작했고. 아이를 잘 다독여 눕히곤 체온을 쟀더니 39.4도였다.



해열재를 먹이고 다독이니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든 시각 5시 반. 어린이집 선생님께 연락해보니 숲에 가서도 아주 열심히 방방 뛰며 놀았다고 한다. 4시 무렵부터 아이가 눕고 싶어 했다고 하시는 걸 보니 아이가 그때부터 38도가 넘은 것 같다. (37도엔 쌩쌩하게 놀고 38도가 넘어가면 조금씩 처지기 시작하고 , 38.6을 넘어서면 급격하게 처지기 시작하면서 39도를 넘으면 엉엉 울거나 아예 처져서 잔다)










새벽 2시 반.


'아 배고파' 하며 아이가 일어났다. 아이의 저 나지막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졌다. (엄마 다 됐네 장하다) 9시간을 내리 잔 아이는 컨디션이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체온을 측정해보니 39도였다. 배를 하나 까서 먹이고 , 물도 먹였다. 옷을 갈아입히고 다시 따듯한 수건으로 여기저기 닦아줬다. 아 , 목 / 얼굴 은 체온을 내리려고 닦아줬고 나머지는.. 숲에 다녀왔는데 샤워도 안 하고 자서 찝찝해서 닦아줬다 ㅋㅋ. 약을 한번 더 먹이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토닥이니 아이의 숨결이 진정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시온아 , 엄마도 예전에 엄청 자주 아팠거든. 한 달에 한 번은 엄청 아팠었어. 그럼 그때 엄마의 엄마 , 그러니까 시온이 할머니가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엄마한테 달려와주셨어. 못 오실 때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엄마한테 와주셨어. 못 오시면 119라도 불러서 동네 응급실이라도 갈 수 있도록 해주셨어. 할머니는 엄마를 다독여주고 발도 주물러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야. 아픈 건 아파서 너무 싫었는데 할머니가 엄마 곁에 계속 있고 관심을 주시는 게 너무 좋더라고. 혹시 시온이도 그러니?"



"응 , 엄마 나 아픈 건 너무 싫은데 엄마가 같이 있어주고 먹고 싶은 것도 사다 주고 해서 좋아. 아픈데 좋아 , 근데 엄마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이제 미술학원에 가고 싶어."



"왜?"



"어린이집은 친구들이 너무 많아. 힘들어."



"그럼 미술학원은?"



"어린이집은 8명인데 , 미술학원은 4명이야. 그래서 거기가 더 좋아"




7월 1일부터 꽉 채워 2달 하고 보름. 여름방학에도 너무 즐거워서 꼭 나가야 한다던 아이는 속도조절을 하지 못하고 지친 것 같다. 새근새근 잠드는 아이를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 엄마도 날 이렇게 바라보셨을까.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생리통으로 쓰러져서 친구가 무거웠던 나를 이고 지고 해서 응급실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 연락을 받은 엄마는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50분 만에 헐레벌떡 엄청 밟아서 오셨던 게 기억이 난다. 너무 아파서 자궁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는데 , 그럼에도 엄마가 걱정해주는 게 나쁘지 않았었다. 따듯하고 다정한 엄마 손이 내 차가운 발을 꼭 잡아주는 순간이 좋았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힘든 일들이 참 많았는데 엄마의 부재로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었다. (아빠의 부재도 있었지만 , 아마 그땐 아빠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어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 것 같다.) 참 서러웠는데 , 그때의 관심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돼서 29살까지 날 괴롭힌 생리통으로 엄마의 애간장도 녹여버리고 모든 지극정성을 다 받아봤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응급실을 가고 쓰러지고 난리 버거지였던 그 생리통이 이제야 고마워진다. 그것도 아니었음 엄마의 그런 무한 걱정을 언제 받아봤을꼬. ㅋㅋㅋ

(엄마가 또 이걸 읽으시면 내 등짝을 후려치러 오시겠지. 으휴 , 철딱서니 ! 라며  ㅋㅋ)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컨디션이 좋아 보였으나 10시가 넘어갈 무렵 급격히 안색이 안 좋아졌다. 열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 것. 아침을 잘 먹고 응가도 잘하길래 잘 지나간 줄 알았더니 그게 또 아니었나 보다. 한참을 동생이랑 거실에서 굴러다니길래 약을 먹여 낮잠을 재웠다. 정말 오랜만에 1호와 2호를 한방에 재워버렸다. 엄마 능력치 레벨업.








컨디션 나쁜 1호와 오빠 덕에 이것저것 맛있는 걸 잔뜩 먹어 기분 좋은 2호. 하루를 다 보내고 다시 저녁잠을 재우러 들어갔더니 아픈 아이 덕에 조금 더 다정해진 엄마가 마음에 들었는지(?) 1호와 2호가 엄청 치댄다. 양쪽에서 뽀뽀를 하고 , 내게 폭 안겨 잠이 들었다. 아 잠들기 전까지 내 얼굴도 쓰다듬어주고 날 토닥토닥해줬다.



귀여운 것들.





이 맛에 엄마를 하는가 보다.





우울증이 나아지는 추세라 아픈 아이 1 + 그냥 천방지축 아이 1 이렇게 둘을 봐도 그럭저럭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 아 좀 지치고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뿐이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할만한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종일 고단했는데 맥주에 꼬북칩먹으면서 글을 적고 , 나혼자 산다보면서 스트레칭해가며 낄낄거리다보니 오늘하루도 괜찮았던 것 같다.


아이가 아팠고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나 , 나름 이 안에서 하루를 잘 살아낸 것 같다. 아이들덕에 웃을 때도 많았고.




우울증으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회복되어가는게 느껴진다. 크게 달라진게 없는 삶인데 , 그 무게가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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