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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Sep 19. 2022

양아치가 늙으면?

(냥아치는 귀엽기라도 하지) 우울증 치료 175일.


내겐 일생일대의 사건들이 몇 가지가 있다.


1

중학교 3학년. 충동적으로 머리를 커트로 잘랐다. 좋아하던 가수의 머리 모양과 똑같고 싶던 욕망과 더불어 시험을 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감과 동시에 안 그래도 없던 외모 자신감이 뚝-떨어졌다. 그런 내게 슬금거리며 다가오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2살 많던 오빠였는데 맨날 틱틱거리기만 했었는데 어째서인지 다정하니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이 새키 뭐지 뭔 수작이야'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나쁘지는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으랴.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열 번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두어 번 반 찍어도 넘어가는 나무였다. 나무가 넘어가기 직전 ,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놈 새키가 내기를 했단다. 과연 내가 넘어오나 안 넘어오나. 


아 미친 자들이여.



2.

스무 살이 되었다. 맨날 치고받고 하던 남사친이 있었는데 서로 엽사를 찍어서 싸이월드에 올리고 놀았었다. (아 , 청춘이여) 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상대방의 엽사와 다른 청년들의 멀쩡한 사진 을 찍어서 싸이클럽에 업로드를 하고 서로 어찌나 낄낄거렸는지. 그 땐 그 실없는 장난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교회 축제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찍사였고 남사친은 연극을 했는데 거기엔 회장 오빠도 참여해서 여장을 하게 되었다. 남사친의 엽사를 찍는데 옆에 있던 회상 오빠가 유쾌하게 "V" 를 하길래 같이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를 했다.그래도 초상권은 지켜주고 싶어 눈은 모자이크를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으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축제가 끝나고 며칠 뒤, 교회에 갈 일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저 멀리서 회장 오빠의 분통 터지는 목소리라 들렸다.


"눈만 가리면 다냐? 그거 선 넘었지.. 그건 올리면 안 되지. 어쩌고 저쩌고 " 하면서 이어지는 나의 욕들. 본인이 찍으라고 포즈까지 취해놓고는 ?  나는 어디 선을 넘은 거였을까. 눈을 가린 게 잘못이었을까.


그리고 8년 후 그분께 연락이 왔다. 

"네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추석엔 무엇을 하냐. 부모님께서 이번 추석엔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어쩌고 저쩌고 "


???? 

어쩌라고.


참 재밌는 인생이다.



3.

33살에서 34살. 

난 책 읽기에 미쳐있었다. 나의 독서타입은 한분야만 찍어 파는데 하필 그때 팠던 게 기독교 서적이었다. 혼자 읽기는 아까워서 알음알음 아시는 분들과 함께 읽었다. 세상은 넓고 좋은 책은 많으므로. 그분들은 독서모임이 너무 좋으니 교회에서 지원금을 받는 동아리 형태로 승인을 받자고 하셨다. 어쩌다 보니 총대를 메었다. 하긴 , 주로 책을 선정하고 모임을 이끌었으니 총대를 메긴 멨어야지. 아시는 집사님이 바지사장을 해주신다고 해서 같이 L목사님을 만나러 갔었다. 나는 동아리 리더를 하기엔 교회에서 하는 여러 교육들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라 , 나는 총무 그분은 바지 리더. 충실히 계획서를 적고 앞으로 읽어나가고 싶은 책 리스트를 만들었다. 내가 보고 싶던 책들과 주변 목사님들께도 몇 권 추천을 받았다.


그런데 너무 당혹스러웠다. L목사님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기세로 날 몰아붙였다. 리더 자격이 없노라고.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인격모독 아닌가? 하는 말들이 오고 갔다. 지적허영심이 많다며 ? 왜 그렇게 성경을 알고 싶냐고 ? 이미 알고있는거나 잘지키라며 ? 


난 어른들한테 따박따박 말을 받아치는 걸 잘 못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컸기 때문에 어른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인데.. 사실은 상상조차 못 한 이 상황에 벙-쪘기 때문이었다.


완전 까이고 난 며칠 뒤 , L목사님은 나와 같이 들어갔던 분께 따로 연락을 하셨다고 했다. 그 모임 생각해보니 참 좋은 계획이니 해보자고. 


그 뒤로 모임은 이어지지 않았으나 묘한 생채기를 남겼었다.  몇 달 뒤 나는 도저히 L목사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과의 상의 끝에 교회를 옮겼다.


교회를 옮기고 얼마 뒤, 아시는 분께 연락을 받았다. 설교시간에 내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유튜브에 박제된 영상을 찾아봤다. L목사님은 웃으면서 날 돌려 깠다. 사실관계를 따지면 L목사님의 이야기에는 거짓이 하나도 없었지만 , 본인에게 유리한 쪽의 이야기만 하셨다. 싱글싱글 웃으시며 날 웃음거리 삼으셨다. 내가 결국엔 삐져서 교회를 옮긴 것 같다는 이야기와 더불어서. PPT 자료도 정성스레 준비하셔서 내가 리스트로 작성해간 책중에  저자 A목사님을 겁나 돌려깠다. 


그렇게 은연중에 난 또 그 많은 사람들에게 무지한 무지렁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재밌는 인생은 이어진다.



4.

L목사님과의 한바탕으로 넋이 나갔다. 멍 때리고 정신을 차릴 시간이 필요했다.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는 실컷 멍을 때리고 있었다. 낯익은 뒷모습이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교회 O집사님. 친언니 같다고 내 마음을 몽땅 꺼내 보여줬던 분. 아이를 키우며 위태로웠던 날들에 위로가 되었던 분. 집 앞에 짧은 편지와 함께 김밥과 샌드위치를 놓고 가기도 했던 기쁨이 되셨던 분. 


바로 아는 척을 하면 사람을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 전화를 해봤다. 


전화벨이 울렸고 , 그분은 깜짝 놀라 앞에 계시던 분께 이야기했다. "어머 , 소문을 들은 걸까요? 어쩌죠? 받을까요 말까요?" 결국 그분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다짜고짜 뒤에서 큰소리를 냈다. 내 소문이 무엇이냐고. 도대체 무슨 소문이 나고 있는 거냐고. 그분은 귀신을 본 것 마냥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심심할 틈이 없는 인생이네. 무슨 소문이었을까.



5.


결국 O집사님에게 저녁에 전화를 걸었으나 나중에 통화하자는 답을 받고는 며칠 뒤에야 연락이 닿았다. 소문이 무슨 이야기냐? 물으니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L목사님과 대면을 하고 나서 화가 났었다. 넋도 나갔고. 친구같이 지내던 동갑내기 집사님한테 전화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으랴. 다짜고짜 내질렀다. 어서 교회를 옮기라고! 거기 있다가는 언젠가는 나처럼 뒷말 들을 거라고. 뭐 좋아 거기 다니냐고. 


나와 전화를 끊고 그분이 우리 구역을 담당하던 K목사님한테 전화를 한 것 같다. K목사님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나보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셨다. 거의 이단 취급을 받았다. 성실하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에게 왜 바람을 넣냐며 와다다닥 언성을 높이셨다. 그래서 결국엔 마지막에 나도 못 참아서 질러버렸다. 성실하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이 더 나은 인성을 가지고 있는 목사님이랑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게 더 성실한 믿음 생활 아닌가요?. 어쩌고 저쩌고 .."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더니 주저하던 O집사님은 실은 본인이 K목사님께 이야기를 한 것이라 했다.  내 전화를 받았던 동갑내기집사님이 O집사님께 전화를 했고 O집사님이 K목사님께 전화를 하는 아름다운 구조였다. 날 정말 이단이라고 생각이라도 한걸까.


아..


내게 먼저 물어주었음 더 좋았을 텐데..

이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집단은 도대체 뭐지.



6.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최근에 바빠진 동생은 교회를 자주 못 나갔는데 , 같이 교회를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는 "혹시 맹수봉 때문에 교회를 옮긴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K목사님은 내가 그 교회에 미꾸라지처럼 물을 흐리고 있으며 사람들을 빼내가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전화 돌려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모양이다. 하하하


정말이지 신나는 인생이다.



7.

육아로 힘들어하던 분이 계셨다. 같이 성경 쓰기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딱 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우리 열심히 써보자! 그럼 좀 마음이 한결 나아지지 않겠느냐 하며 열심을 냈다. 나 또한 육아 중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아마 우울증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다)


K목사님께 또 전화가 와서는 소환당했다.


내가 뭐라도 되는 양 하지 말란다. 힘든 사람들끼리 으쌰 으쌰 해서 성경 좀 쓰겠다는데?? 저 반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교회에는 질서라는 게 있다고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본인을 이해하는 날이 있을 거라 했다. 


그래 봐야 K목사님과 나는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목사와 성도 사이를 상하 수직적인 관계로 보았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대화의 마무리는 '네 죄송합니다. 안 그러겠습니다'인 것 같은데 도무지 난 죄송하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약속이 있다며 시간이 다됐다고 그냥 도망쳐 나왔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생각이 안된다. 해프닝으로 넘어갈 법한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깊은 생채기로 자리 잡아버린 걸까. 질린다 정말.


객관적으로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이었을까? 이렇게 욕을 먹고 돌려 까기를 당할 정도로? 내가 잘못한 일이라면 그에 따른 부수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에 마음을 깔끔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찝찝해도 너무 찝찝하다.


마음밭이 괜찮은 날들에는 욱-하고 화가 올라오고 말지만 , 우울감이 지배적인 날에는 여러 사건들은 내 감정을 끌고 지하 땅끝까지 가버린다. 비웃던 목사님과 내 전화에 깜짝 놀라 전화를 받지 않던 O집사님. 그리고 목소리만 생각해도 짜증이 솟아나는 K목사님.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으나 여전히 내게 영향을 미치는게 찝찝하고 싫었다. 이제 그만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내속이 좁은건지 여전히 짜증이나고 화가 치솟는다. 오늘 병원에 간 김에 선생님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몇 년이나 흘렀으면 이젠 그만 생각날법한 거 아니냐고. 왜 나는 아직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거냐고.



"이런 마음인 경우에는 용서가 아닌 이해를 해야 돼요. 그들이 미성숙하다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임이 이해가 돼야 그런 감정이 수그러 들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분들은 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노인 관련 일을 해요. 어르신들을 만날 기회가 많죠. 어느 날 그 친구가 제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람이 늙는다고 다 어르신이 되는 게 아니야. 양아치가 늙으면 어르신이 되는 게 아니라고. 양아치가 늙으면 늙은 양아치가 되는 거야". 그 말인즉슨 그 사람의 나이가 그 사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아마 당분간은 그 생각들로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용서 말고 그들을 이해를 하는 쪽으로 갈피를 잡으신다면 마음이 더 편해지실 수 있을 거예요"


"늙은 양아치라뇨 ㅋㅋㅋㅋㅋㅋㅋ" 엄청 뿜어버렸다. 끅끅-거리며 웃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셨던 분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 나이의 성숙함을 이야기한 거예요"


알죠 알죠!! 알다마다요!

하지만 저 표현에서 오는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이 통쾌해졌다. 이제 그들을 이해할 시간이다. 내 소중한 하루를 그들로인해 망칠 수 없다.


그들을 놓아줄 시간이다.



화를 낼 때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해 속된 노여움을 보이지 마라. 현명한 자에게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분노에 빠져들면, 먼저 자신이 화내고 있음을 인지하라. 그다음엔 곧바로 그것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생각하라. 이제 분노가 어디까지 가야 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측정하라. 깊이 생각해 노여워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구분하라. 적절한 시기에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움직일 때 가장 힘든 일은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헤매고 있을 때 현명함을 유지하는 것은 분별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다. 과도한 열정이란 모두 이성적인 본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열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제나 신중함을 제어할 수 있는 고삐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 수업> 중에서


덧, 지금 옮긴교회에서는 다정하고 따듯한 목사님을 만나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



- 복용중인 약 : 에스벤서방정 50mg , 폭세틴캡슐 1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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