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200일 언저리
호르몬이 들끓는 시기가 되었다.
엊그제 생리를 한 것 같은데 벌써 생리 전 증후군으로 난감스럽다. 좀 잠잠해졌나 싶더니 다시금 무서운 기세로 날 잡아먹으려 든다. 가을이라 더 그런가? 가을을 타는 것뿐일까? 치료 정체기일까?
일단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졌다. 몸이 축 늘어져서 물먹은 솜처럼 바닥과 하나가 되려고만 한다. 날이 추워져서 더 누워있고 싶고 이불을 덮고 뒹굴거리고 싶은 게으른 마음과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병적인 피곤함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거기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늘어갔고 예민도가 높아졌다. 아이들에게 쉽게 화가 올라왔고 소란스러운 상황을 견뎌내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나마 조금 희망 적인 것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심호흡을 하면 참아낼 수 있다는 것. 돌고래 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3살 아이를 보고 있자면 같이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그냥 참아낸다. 그럼 참아진다.
더불어 남편도 알아차려버렸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라며.
감정의 민낯이 드러나는가 보다. 분명 잘 숨길 수 있었는데. 다시금 감정의 방어벽이 무너지는 것 같다.
6살 큰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왔다. 넓고 넓은 8인 책상에 아이의 흔적이 가득 있었다.
저 알록달록함이 나의 숨을 조이는 것 만 같아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의 사랑스러운 놀이의 흔적을 이따위로 생각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어졌다. 이런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미안했다.
아이 나름 곱게 색종이 탑을 쌓아놓고 정리를 마친 후 등원을 한 것 같은데.. 괜히 더 미안해졌다.
이러다간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 같기도 하고 , 나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3일 정도를 당겨 병원에 갔다.
“하 , 선생님 진짜 너무 힘들어요. 괜찮다가 이렇게 안 좋아지기를 반복하니까 너무 힘들어요. 가을을 타는 건지 아니면 증상이 심해진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 어쩌죠”
“우리 1-2주만 참아 볼까요? 가을을 타는 거면 몸이 겨울을 대비하여 적응을 마치면 괜찮아질 것이고 ,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해진 거라면 생리가 시작하면서 괜찮아질 테니 그때 약을 바꾸던지 증량하던지 결정할까요? 아마 맹수봉 씨가 괜찮았던 기분이 유지가 잘 되다가 갑작스럽게 이런 기분이 찾아오게 되면 더 힘들 수 있어요. 충분히.”
결국 동일한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집에 도착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집안에서 “엄마?!!??” 하는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종종종 달려온다. 이렇게도 반가울까. 도깨비 같은 표정으로 아침내 아이를 바라본 것이 미안스러웠다. 무릎을 꿇어 3살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 미안하다 이야기했다. 엄마 좀 안아줄래?라고 하니 그 작은 아이가 까치발을 들고 두 팔을 번쩍 들어 날 안아준다. 그 작고 다정하며 따듯한 손에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으로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렇게 우울함도 무기력함도 다 녹아내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나의 우울 유전자가 네게는 가지 않았길 바라며.
부디 우리’때문에’ 엄마가 아팠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 , 우리 ‘덕분에’ 엄마가 더 열심을 내어 치료를 받으려고 노력했구나.라고 생각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