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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Nov 01. 2022

생애 가장 무서웠던 밤

아이의 수면 독립을 바라보며.


나는 6학년 13살이었고 

동생은 4학년 11살이었다.


IMF로 빚더미에 앉았기 때문에 아빠는 돈을 벌러 가셔서 몇 년간은 아빠를 뵐 수 없었다. 엄마와 같이 살아가던 중에 친척집에 놀러 가자는 말에 총총총 따라나섰다. 엄마는 은행에 잠시 다녀온다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나가셨다. 시간이 조금 흘러 엄마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작은엄마께 물었더니 , 이미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셨을 거라고 했다.


그제야 생각났다. 

얼마 전 엄마가 '미국 갈래?'라고 물었었고 나는 무서워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던 걸.


그렇게 엄마는 외화벌이에 나섰고 , 나와 동생은 우두커니 그렇게 한국에 남게 되었다. 며칠을 친척집에서 보내고 우리는 친가로 보내졌다. 


낯선 할머니, 낯선 할아버지.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이제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라고 하니 없는 정을 만들어서라도 붙여야 했다. 친할머니는 몇 해 전 돌아가셨는데 늘 입버릇처럼 '우리 수봉이는 착해. 너무 착해'라고 하셨다. 착한 건 천성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무서웠다.



작은 방 한켠에 이 불 한 채가 깔려있었다. 

반듯하게 각 잡힌 이 불 한 채.

쿰쿰한 먼지 냄새와 나프탈렌의 냄새가 뒤엉켜있었다.


분명 그리 추운 날은 아니었는데 너무 추웠고 , 심장이 달음질을 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밤이었다.


남동생의 손을 꼬옥 잡았다.

이곳에서 따듯한 것은 동생의 손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의 뒷일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살아가겠다고 뇌에서 힘든 기억들을 알아서 지워준 모양이다. 그저 할아버지가 여자애가 어디서 그런 짧은 반바지를 입고 학교를 갔다 왔냐며 장대 빗자루를 들고 아주 멀리까지 날 잡는다며 뛰어오셨던 것만 기억이 난다.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생각나는 과거의 일들에 발목이 잡혀서 우울의 늪으로 자꾸만 끌려들어 간다.


이제는 괜찮다고 , 넌 안전하다고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건네지만 심장은 여전히 요동친다. 6학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자라나 우울증이 되었고 4학년이었던 동생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어디부터 잘 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감정의 기억을 끊어내고 오늘을 덤덤하고 감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내고 싶다.


종종 잠 못 드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 그날 밤 동생의 손을 꼭 잡을게 아니라 괜찮다며 안아줬어야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가 조금 남는다. 그래도 나는 누나였으니까.




6살 3살 남매의 수면 독립을 연습 중이다. 아이 둘을 같이 재우고 나와서 , 남편과 같이 자기 시작했다. 처음엔 좀 어색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내 자리를 찾은 것 마냥 아늑하고 따듯하고 다정하다. 안심이 된다. (남편이 종종 코를 골 때만 빼고 ㅋㅋ)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6살 아이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안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세상에서 가장 배신감에 쩔어있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본인과 같이 자자고 이야기한다. 


무섭단다.


감정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인과 비교를 할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무서움의 감정과 아이가 느끼는 무서움의 감정의 깊이는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아이가 두려움을 표시한다면 무서움은 무서움이다. 아이는 아직 두려워하는 걸까? 아직은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소름 끼치도록 칠흑 같던 밤을 아이또한 경험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철새마냥 밤마다 여기저기 날아다니게 되었다.


아이들이 잠들 때 같이 누워있다가 

나와서 집안일 마무리를 하고 

남편 곁에 가서 누워서 잠이 들었다가

아이가 엄마를 찾아 나오면 후다닥 아이들 방으로 간다.

행여 큰소리로 울거나 하면 둘째가 깨버리는 불상사가..


남편은 힘들게 그러지 말고 아이들 방에서 계속 자라고 하는데 ,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이쁜 건 사실이지만서도 남편곁이 안심이 되고 보호받는 기분이라..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아예 다 같이 잘까? 도 생각해봤지만 아이들이 부부 사이로 쏙-들어오기 때문에 그건 통과. 


당분간은 밤의 철새로 살아가련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들! 새벽에 엄마 찾으러 오지 마! 엄마 내 거야!"


"아빠!!!! 아니야! 엄마는 내 거야!"


이러고 둘이 싸우고 있는 게 철새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두 사람의 사랑에 불타버릴 것 같다.

앗 뜨거뜨거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하고. 하하


칠흑같던 밤에 동이트고 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말은 진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남편덕에 무한히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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