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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Nov 17. 2022

아무것도 없어 되려 가득했던 7주년 결혼기념일.

우울증 치료 232일


2015.11.14 결혼을 했다.

11시 예식으로 기억한다.

새벽부터 무척이나 부산스러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미용실에서 답답했던 앞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매년 비슷한 시기가 되면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에 가서 찍는 멋들어진 사진들은 아니지만 , 집에서 차곡히 쌓아온 사진들은 우리의 다정한 날들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따듯해진다.


사실 나는 결혼은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나의 엄마가 아내로서 꾸려가는 삶이 힘들어 보였기 때문에 연애는 해도 결혼은 크게 뜻이 없었다. 맞벌이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며 제사는 왜 그렇게 많았는지.. 그때가 되면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들이 집으로 몰려왔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게 조금 이른 29살에. 연애는 여러 번 했었는데 이상스럽게도(? 물음표가 자주 등장하는 건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겠지 ㅋㅋ)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결혼을 해도 될 것 같은 묘한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결혼 결심이 들었던 건 그가 '빚'을 고백하던 날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모양 빠져 보이고 남자 자존심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목일지 모르지만 ,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온 그에게 남겨진 것이라면 크게 의미가 없었다.  ‘들킨’것이 아닌 스스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었기 때문에 그의 자신감이 좋았다. 올곧음이 좋았다. 더불어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고백하는 그에게서 앞으로 나 몰래 사용하는 돈들로 크게 마음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도박, 사채 , 보증 이런 것들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7년을 살아보니 회사 동료들은 와이프에게 감춘다는 그 사막의 샘물 같은 보너스를 기쁜 마음으로 내게 가져다주었다. 역시가 역시였던 대목이랄까)


결혼도 결혼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엄마가 엄마로 살아가는 건 늘 힘들고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늘 내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보통 딸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터놓는 걸 감안해보지만 빈도와 강도가 쬐끔 세다. 최근에서야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딸이 있으니까 좋네"라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동생에게 이야기하니 그 이야기를 이제야 들었냐며 웃는다. 그러게 나는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들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딸이라는 말을 무척 많이 들었는데 , 그 뒤에 수반되는 말들은 힘들다 였으니 어떤 게 맞는지 종종 혼란스럽기는 하다.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의 마음을 알아가는 건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 나의 엄마 , 아빠의 이야기이지 어쩌면 나의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놀아주는 그 덕분에 벌써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역시는 역시.

엄마의 짐은 무거웠으나 ,

나의 엄마는 혼자 짊어졌을 그 무게를

나는 나의 사랑하는 남편과 나누어지고 있다.


엄마와 나의 삶은 다르고 분리되어있다는 걸 ‘그’ 덕분에 알아가고 있다.




나는 덩치가  남자가 욱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는 것에 상당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상향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 우리의 그는 불합리함을 참지 못했다. 신랑을  나의 몇몇 친구는 다정한 리트리버 (?) 같은 느낌을 받지만 , 뭐랄까.. 견종이  다른데.. 셰퍼드랄까? ㅋㅋ  셰퍼드는 불합리한  참지 못하지. 껄껄



신혼 초에는 그거 때문에 종종 부딪치기도 하고 울고불고하기도 했었는데 ,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또 노력해주는 모습들 덕분에 잘 맞춰져서 신혼 때 보다 더 재밌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의 최선이 내 마음에 닿아 따듯함이 번진다.


얼마 전까지는 결혼기념일이 되면 근사한 곳을 예약해서 밥도 먹고 그랬었는데 , 이번엔 아이들이 아프기도 했고 남편이 출근을 하던 날이라 유독 힘든 날을 보냈었다. 열이 나고 기침을 컹컹컹하는 나의 귀여운 아이들의 지독한 엄마사랑이란..


저녁을 먹여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 아픈 아이들에게 기가 빨려 힘들기도 했고, 다운된 기분을  좀 올려볼까 싶어 집에 있던 와인을 한잔 따라서 마시고 있었다. 적막한 이 시간이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곧 코가 막힌 큰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아 나온다. 곁에 가서 다독여 다시 재우고 남은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엄마는 왜 내 옆에서 잠들지 않는 거냐며 울면서 또 엄마를 찾아 나왔다. 이런 지독한 사랑꾼.. 다시 아이 곁을 지켰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와서 남은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와인을 한잔 더 따랐다.


밤 열 시가 넘어가는 시각.


보통은 12시는 돼야 들어오는 신랑이 일찍 퇴근해서 왔다. 그래 새벽 4시에 나갔으면 열 시엔 들어와야지.. 둘이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과자를 오독오독 먹어가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며 나누었다.



어둑한 집 , 다정히 번지는 조도가 낮은 조명 하나 , 따듯한 거실 , 맛있는 와인.



남편이 문득 "살아보니 어떤 거 같아?"라고 선빵을 했다.

아 , 내가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 7년 살아보니 고마운 일들이 너무 많아. 결혼을 참 잘했다고 생각해. 오빠 덕분에 우울증도 이만큼 나아질 수 있었어. 고마워. 살림도 잘해주고 아이들도 같이 잘 키워줘서 너무 고마워. 근데 오빠는 속아서 결혼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밝고 긍정적인 친구 같아서 결혼했는데 , 막상 보니 우울증에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날카롭고.”


"아니야 , 난 좋아. 나랑 결혼해줘서 너무 고마워. 난 지금이 너무 좋아”



그의 진심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결혼기념일의 다정한 밤이 지나갔다.


덧,

최근 들어 아이들끼리 재우고 그와 함께 침실을 쓰기 시작했지만 아픈 아이들은 지독한 사랑꾼이므로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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