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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Nov 17. 2022

우울한 나의 인생이 젠가 놀이와 같다면-상편

우울증치료 8개월


나는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우울감이 아닌 , 꼭 도움을 받아야 하는 깊은 우울증. 사람들은 인생에 한 번은 우울증에 걸린다는데 나는 왜 서른 언저리쯤 일찍이나 찾아온 걸까.


아니지 , 십 대 때 올 수 있었던 게 좀 늦게 발현이 된 걸까.


아이와 젠가 놀이를 하다가 어쩌면 인생은 젠가와 비슷한 모양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곡차곡 잘 쌓아 올린 젠가는 높이 쌓아도 견고히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견고히 쌓였더라도 큰 사건 예를 들어 사별과 같은 일들을 만나면 PTSD와 같은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뭉텅이로 젠가를 빼버린 거니까.


그러나 어리디 어린 시절에 인생의 참맛을 미리 본 사람들은 얼기설기 젠가를 쌓아 올리게 된다. 아무거나 막 빼서 막 올리고. 그러다 보면 젠가가 불안정해지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작은 스트레스, 젠가 하나를 빼려고 살짝 건드리려는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무너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아래가 단단하지 못한 나의 젠가는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더 훗날에 흔들릴 수 밖에 없던 것이 아닐까.


나의 흔들리는 젠가를 일찍이 확인하고 유지보수를 해갔다면 어쩌면 작은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건 모르겠다.


게임을 하다 보면 망해가는 게 눈에 보여 곧 질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젠가 판을 엎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혹은 작은 움직임에 전체가 무너졌다던지.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

그렇게 별이 되는 사람들.


늦음과 이름. 그 어중간한 사이에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다. 유지보수가 필요했다. 젠가판을 엎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살고 싶었다.

젠가를 처음부터 튼튼히 다시 만들고 싶었다. 물론 처음엔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가족에 의해 만들어지는거지만.. 그냥 다시 튼튼히 만들어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미 시작 된 판을 엎어버릴 수는 없으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유지보수를 튼튼히 해보기로 했다.





얼기설기 위태로웠던 젠가들 사이사이에 약을 넣고 노력과 주변의 도움을 채워 넣었다. 마음 같아선 순간접착제로 다 붙여버리고 싶지만 그럴 도리가 없음으로 차곡차곡 단단히 만들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며 불안정한 젠가를 걱정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괜찮다.


일단 오늘은 살아갈 수 있다.


아이 둘이 감기에 걸려서 밤새도록 기침을 했다. 나도 옮았다. 곧 나는 38도가 넘는 고열이 날지도 모른다. 으슬으슬 춥고 목이 간지럽다. 그러나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아이들의 짜증을 받아낼 수 있다. 나는 엄마이고 , 치료를 잘 받고 있으며, 오늘도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왔으니까.


더불어 젠가 완전정복을 위해 책으로 치트키 공부도 하고 있고 (우울증 관련 책을 여전히 많이 본다) 나의 감정을 한 번씩 끌어내리는 사건들이나 사람들을 마주할 것 같으면 피하거나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한다.


그래 이제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젠가가 아니라

‘나’를 위한 젠가를 이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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