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8개월 (240일 언저리)
상편 먼저보기 :
https://brunch.co.kr/@minqhd/60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선생님 , 저 이번에 엄청난 2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라며 약조절 후 괜찮게 느꼈던 부분들과 감정들을 쏟아냈다.
엄청난 발견 하나는,
우울증 치료 8개월이 돼서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0”의 감정을 마주한 것 같음을 이야기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 참조)
https://brunch.co.kr/@minqhd/57
요약하자면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0”의 기분을 찾고 나의 기분이 지금 어느 정도 인가에 대한 ‘인지’가 중요 포인트인 것 같았다.
-5가 우울증이라면 , 나는 -5에서 치료를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괜찮은 기분을 마주했었다. “0”의 지점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1 ~ -2의 기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허허. -1에서 -2가 편했던 이유는 과거의 내가 주로 느꼈던 감정들이었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만성 얕은 우울감?이랄까. (우울감과 우울증은 판이하게 다르다) 만성피로도 아니고 이게 무슨 작명인가 싶지만 ㅋㅋ..
여하튼 어느 날인가 약을 증량하고 보니 , 기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진짜 “0”의 기분을 알게 되었다. 좀 놀란 것은 이런 우울감이 걷힌 평이한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간다는 게 너무나 평온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작은 사건사고들이 있지만 내 기분을 저 바닥에 처박을 정도가 되지도 않았고 털어낼 수 있었다. 그래 , 힘든 일을 ‘털어낼 수 ‘ 있었다. 꾸역꾸역 날 질식시키지 않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경청하시던 선생님은
“ 말이 많아졌거나 안 하던 행동을 하거나 , 연락을 안 하던 사람들에게 따로 연락을 하거나 방방 뜨거나 혹은 잠을 자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칠 것 같고.. 그러지는 않으시나요?” 물으셨다.
딱히 그러지는 않았다.
“괜찮은 날들이었었요. 감정의 진동폭이 적어져서 괜찮았고 가족들이 다 감기였고 저도 심한 감기였는데 물 흐르듯 잘 지나갔어요.(마음이) 잠은 잘 자고 있고 숨 쉬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정히 웃으시는 것과 동시에 눈이 엄청 커지셨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외치셨다.
“어???? 눈썹 문신하셨네요? 충동적이었던 걸까요?”
와 ㅋㅋㅋㅋㅋ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던 터라 엔간하면 알아보기 힘드셨을 텐데 그걸 매의 눈으로 캐치하셨다. 대단해.. 이렇게 섬세하시니 정신과 교수님이 되실 수 있었던 걸까.
선생님은 0의 기분을 찾은 거라면 너무 다행이겠지만 , 살짝 방방 뜬 +1의 감정이라면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눈썹을 문신한 거면 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역시나 매의 눈으로 나의 눈썹을 힐끔 보셨다.
“(괜히 뜨끔) 눈썹은 원래 계획에 있던 거였는데 이제야 시간이 맞아서 한 거였습니다.” 뭔가 도둑질을 걸린 것 같은 기분이 살짝 드는 건 느낌일 뿐이었을까. 손사래를 너무 격렬하게 쳐서 스스로가 변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일까. 뭐 여하튼 눈썹 문신은 너무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엄마랑 겨우 한 거니 충동적이진 않았던 게 확실하긴 하다.
그리고 두 번째 엄청난 발견을 말씀드렸다.
“선생님 , 저 브런치에 글 올린다고 했었는데.. 인생이 젠가 게임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우울증에 걸린 나는 젠가 아래가 너무 불안정해서 언젠가는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 빈 곳에 약과 적절한 심리치료 같은 걸 넣어야 무너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자세한 내용은 우울한 나의 인생이 젠가 게임과 같다면 ‘상편’ 참고)
https://brunch.co.kr/@minqhd/60
“그런데요 선생님 , 이렇게 해서 젠가가 단단해진다면 나중에 약을 빼고 심리치료를 빼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뺄 수는 있을까요?”
“오 이 그림을 맹수봉 씨가 그리신 거예요??? 잘 그리셨는데요? 오오오오 , 삶이 젠가와 같다 표현을 하셨는데 이런 표현도 좋을 수 있지만 저는 대부분 다리뼈가 부러진 것을 많이 비유해요. 넘어져서 종아리뼈가 댕강-하고 두 동강이 났어요. 그럼 뼈를 맞추고 깁스를 해주죠. 뼈가 붙기를 기다리면서. 사람에겐 “회복탄력성”이 있으니까요. 정신의학 쪽에서는 깁스를 해주는걸 약 복용이라고 이야기해요. 지지를 해주는 거죠.”
내가 다시 되물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처음에 6개월에서 1년 정도 치료기간을 생각하셨는데 , 깁스를 당최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어떤 질병에 걸리게 되면 ‘평균적인 치료기간’이라는 게 있죠. 맹수봉 씨 같은 경우는 6개월에서 1년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더 오래된 우울감이었기 때문에 좀 더 깁스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 금이 간 줄 알았는데 댕강 부러진 거죠. 보통 치료기간을 ‘0’의 기분을 느끼고 나서부터 6개월 정도를 이야기드려요. 지금에야 기분의 발란스가 맞아가니 지금부터 3개월에서 6개월은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뼈가 단단히 붙어 회복이 완전히 되어 깁스를 푸는 것처럼 뇌 호르몬이 단단해지는 시기를 기다리는 거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시는 건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답니다^^”
내 주관적인 감정들과 증상에 의해 치료기간이 달라지고 약물이 달라지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은 날들이 있다.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수치로 보이는 게 좋은데 참 어렵다.
“회복탄력성” 그 말을 되뇌었다.
흠, 그렇다면 이런 그림이 되려나?
불안정했던 나의 젠가들이 꾸준한 치료들로 “약물과 심리치료”가 빠져도 기우뚱거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확장이 되고 자리를 잡아 안정적으로 되어가는 것. 지금이 그런 시기가 아닐까. 조급해하지 말고 뼈가 잘 붙게 노력이나 하자.
나의 회복탄력성을 믿어본다.
힘내라 , 나의 회복탄력성아.
응원하고 또 응원할께 나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