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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Dec 04. 2022

육아의 시선이 달라지자 ,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우울증 치료 246일


감기를 호되게 앓았다.

감기로 이렇게 오래 누워있어 본 적이 내 기억으로는 처음인 것 같았다. 코로나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는데.. 후. 크게 고열이 나지는 않았지만 어지러움을 동반한 두통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몸살이었다.


남편이 있는 날에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내내 잠만 잤다. 남편이 출근했던 날에는 감사히도 친정엄마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덕에 5시간 정도를 내리 잠만 잤다. 의식이 사라진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그리고 찾아온 대망의 날.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던 날,  제법 둘이 놀기 시작한 6살 3살 아이들에게 부탁을 했었다. 미안하지만 엄마가 지금 너무 아파서 좀 누워있겠노라고. 이거 먼저 먹고 둘이 놀고 있어도 되겠냐고. 내 귀여운 아이들은 싱글벙글 웃어가며 놀기 시작했다.


시선이 아이들에게 닿아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들이 있는 곳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 , 얼른 나아져서 애들이랑 같이 놀고 싶다.'


아니? 지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내 몸뚱이가 아픈 이 와중에 얼른 나아서 아이들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가? 진심으로? 분명 몇 달 전 까지는 아플 때마다 '아 다 귀찮다. 그냥 혼자 있고 싶어.' 무한루프의 생각에 갇혀있었는데 이게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확실히 육아의 시선이 달라지는 했다.



have to에서 want to로.

그러니까 꼭 해야만 하는 것에서 이제는 내가 원해서 하게 되는 것들로.

같이 뺨을 비비고 싶고 , 작은 손을 잡고 놀고 싶고 ,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울증 치료에 진전이 있다는 좋은 신호로 여겨본다.


치료 전에는 아이들과 '잘 놀아줘야'한다는 마음에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잘 놀고'있는 것 같다. 활력 없이 동태눈을 하고 있던 엄마는 ,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이들을 한껏 눈에 담는다. 재밌게 웃으며 놀고 싶은 마음은 가득이지만 정신이 따라주지 못했던 우울증 엄마는 ’ 미소'를 짓는 게 최선이었는데, 이제 소리 내서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진심으로 웃고 있다.

소리를 내어.


웃긴 일이 없으면 손가락 두 개로 아이 몸을 콩콩콩 간질이며 “거미가 시온이 타고 올라갑니다 ~” 노래 부르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고 나는 또 그걸 바라보고 웃는다.


하하하ㅏㅏ하하

꺄아아아

꺄하하하하하하




긍정심리학에서 행복이란, 내가 많은 시간을 기분 좋게 지내고, 그 기분 좋을 때 하는 것들이 대다수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가 의대에 합격했을 때, 고시에 합격해 판검사가 됐을 때 행복한 순간으로 꼽아요. 그런 걸 일생에 몇 번이나 겪을 수 있겠어요? 그걸 행복이라고 치며, 우리는 평생 불행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거기에 행복의 기준을 두면,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지루하고 권태롭고 의미 없게 지내게 돼요.

부모가 매일매일 행복감을 느껴야 그걸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데 , 부모가 그러질 않으니 아이에게 행복을 가르칠 수가 없어요. 저는 부모들에게 아이들과 깔깔대고 웃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추천해요.

행복은 근육과 같다고 봐요. 운동을 할 때 처음엔 잘 못하지만,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근육이 생기면 운동을 잘하게 되잖아요. 우리는 구체적인 행복의 그림을 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어떤 상태가 행복한 건지에 대해 잘 몰라요.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조금씩 조금씩 근육을 만들어야 해요. 저 같은 경우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행복하고, 5년 전에 산 자동차이지만,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서 샀기 때문에 이 자동차를 탈 때마다 너무나 행복해요. 내가 일상을 의식하지 않으면 근육이 생기지 않아요. 커피를 ‘즐기며’ 먹어야 커피 한 잔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의식하면서 연습하지 않으면, 행복해지기 어려워요.

[행복을 묻는 당신에게 중 박미라 님의 내용 / 김아리 엮음]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도 파킨슨 병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살면서도 그걸 왜 굳이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지는 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옆 사람의 손이 얼마나 따스하고 위안이 되는지,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경이로운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그 작은 조각의 순간들이 사랑스러워서 아이들이 다 잠든 밤이면 혼자 빙그레 웃기도 한다. 우울증 치료가 아니었다면 지나쳐버릴 조각들이었을 것 같다. 외부에 두던 시선을 거두어 나에게 돌렸고 , ‘나’라는 존재를 파헤치며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다 보니 ‘나의 행복’을 찾아낸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 간지러워!'라는 소리가 들렸다. 혹여나 아이 둘이서 싸울까 싶어 잽싸게 돌아보니 식탁 위에 올라와 앉아있는 녀석들. 왜 바닥을 놔두고 식탁 위에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 1호는 책을 읽고 있었고 2호는 그런 오빠를 바라보며 등을 긁어주고 있었다. 음?  아마도 어제저녁 엄마와 함께 아빠의 등을 긁어주던 게 생각났던 모양이다.


간지럽다고 자지러지는 1호와 오동통한 작은 손을 야무지게 오므려서 오빠의 등을 진지하게 긁어주는 2호의 모습.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웃음이 차오른다.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있었다. 배가 고픈 아이 둘이 이미 식탁에 앉아 엄마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국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려니 얼마나 고달팠을까. 안쓰러워 보이는 마음에 "1호야 , 2호랑 같이 기도하고 먼저 먹을래? "라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둘이 손을 모은다.


"하나님!" 꺄아아낄낄낄낄

"하나니임?" 낄낄깔깔깔

"하나님!!!!"깔깔깔깔


둘이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눈을 맞추고는 한없이 웃고 있었다.

.

하나님도 위에서 보시고 얼마나 웃으셨을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 즐겁게 웃는 아이들이라니. 아 , 김치고 자시구고 저기 끼어들어서 같이 낄낄거리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니 약을 복용하며 삶에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하니 소리내어 진심으로 웃기 시작했고 풍기는 분위기 또한 한껏 다정해지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웃음소리 데시벨이 좀 더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면 아이들은 계속 이렇게 웃었는데 내가 이제야 느낀 걸까?


이건 남편에게 물어봐야겠다.




꽁꽁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푸는 데 필요한 것은 결국 누군가의 다정함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며 오랫동안 문 걸어 잠그고 혼자 웅크리고 있던 어린 나는 (내면 아이) 이렇게 마음의 빗장을 풀고 나오고 있다. 그래 이제 너도 독립하고 성장해야 되지 않겠니. 시끄럽지만 다정한 나의 친구들. 내 사랑하는 친구들. 그들덕에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아 , 나는 종종 가족들을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으로 담는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난 이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 이미 행복한 것 같다.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이 짙어진다.



-

복용중인 약

에스벤서방정 50mg 폭세틴캡슐 30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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