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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Dec 20. 2022

우울할 때 종종 되뇌는 문장들.


우울증 치료가 9개월 정도 되어간다. 최근에는 우울감이 밀려오는 주기가 길어졌고 , 감정의 폭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잡아먹힐 듯한 파도가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럼 잠잠히 파도에 몸을 내어준다. 그리곤 생각한다. 지나갈 것이고 , 지나가는 중이라고.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문장들이 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책을 정리하면서 정신분석의 선구자인 프로이트가 말한 정상의 기준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사람이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즉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문제는 다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서


이 정도의 우울감은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리 전에 예민하고 짜증 없는 여자들이 얼마나 될까. 그걸 감안했을 때 이 정도면 괜찮은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 낸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서


우울과 우울 사이에는 반드시 평이한 날이 있을 것이고 , 그때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과 실컷 웃고 떠드는 일상을 생각해본다. 감정일기를 적어둔걸 나름 분석해보면 곧 괜찮은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괜찮아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견딜 힘이 생긴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그것의 달콤함도 씁쓸함도 오로지 내 책임이다.

- <밤의 사색 (헤르만 헤세 산문집)> 중에


우울증 덕에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만 털고 일어나기를 선택했다. 그것이 내가 나를 책임지는 인생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하고 씁쓸한 그 어딘가의 나만의 고유한 작품을 만들어가야지.





그러므로 고통을 잘 살아내는 것이 인생의 절반이다. 고통을 잘 살아내는 것이 인생 전체이다! 고통에서 힘이 생기고, 통증에서 건강이 생긴다. 갑자기 쓰러져 허망하게 죽는 사람들은 언제나 ‘건강한’ 사람들이다. 고통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이 사람을 끈질기게 하고, 고통이 사람을 강철로 단련한다. - <밤의 사색 (헤르만 헤세 산문집)>중에


고통을 배워가는 중이고 , 단단해지는 중이라 생각해본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내는 법을 체득한다면 더욱 단단해지리라.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부는 것도 좋은 예다. 그 밖의 수많은 사소한 것들, 그들에게서 찾은 작은 기쁨을 꿰어 우리 삶을 엮어 나가자

날마다 작은 기쁨을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하라. 많은 준비를 요구하는 거창한 쾌락은 휴가 때나 조금씩 나누어 인색하게 누려라. 시간이 부족해 쩔쩔매고, 재미있는 일이 없어 심심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나 지친 몸을 추스르게 하는 것은 거창한 쾌락이 아니라 작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밤의 사색 (헤르만 헤세 산문집)> 중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본다. 남편이 내려준 맛있는 커피 , 아이가 써준 나의 이름, 아이 둘이서 밥을 먹어가며 최고의 뜻으로 치켜세워주는 엄지손가락, 나풀거리며 내리는 눈 , 따듯한 방바닥, 좋은 구절의 책 , 동생이 보내준 고양이 사진들.




그러니 최고의 저녁상을 차리겠다고 무리하지 말고 그냥 괜찮은 저녁상을 차리는 것부터 시작하자.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좋은 부모가 되자. 웬만하면 만족하라. 걱정은 흔히 완벽한 선택을 하거나 모든 것을 극대화하고 싶을 때 촉발된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


정신이 힘든 날은 밥을 차리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나 고단하게 느껴진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어떻게 구성해서 밥으로 만들어낼지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런 날들엔 그냥 저녁상을 차리는 것으로 만족해하거나 혹은 맛있는 김밥집으로 배달 주문을 넣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충 배춧국을 끓였는데 아이들이 맛있다고 두 그릇씩 싹싹 비워주는 걸 바라보며 이만하면 괜찮은 한 끼였다고 만족해본다.




우울증에 걸린 뇌는 아마 포기하라고 말할 것이다. 운동을 하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의견은 고맙게 잘 들었다고 대답하고 이제 걸으러 나가자.


혼자 있고 싶었지만, 그러면 자신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혼자 있고 싶어질 때마다 억지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라운지에서 공부를 했다. 일부러 누군가에게 말을 걸진 않았지만, 반드시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하강 나선 속으로 더 깊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우울증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병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도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과 아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싶어 진다. 그러나 이처럼 고독을 바라는 상태는 우울증에 걸린 뇌가 보이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다. 운동하기 싫은 마음이 운동하지 않는 상태를 고착시키는 것처럼 고독을 바라는 마음은 우울증을 더 고착시킨다. 이 책이 주는 뇌 과학의 매우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아무리 혼자 있고 싶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할 희망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에서


아파서 눕고 싶은 것과 우울한 뇌에 갇혀서 눕고 싶은 걸 구분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파서 눕고 싶다면 스르륵 잠이 들터인데 , 잠은 오지 않고 늘어지고만 싶은 것에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면 꾸역꾸역 짐을 싸서 카페로 향했다.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며 무거운 마음을 안고 터벅터벅 집을 나선다. 노이스 캔슬링이 잘 되는 헤드셋을 장착하고는 그저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한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해볼까?’ 하는 마음이 일렁인다. 의욕이 조금 생기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않고 책을 읽던지 글을 적어 내려 간다. 그러다 보면 더 깊은 우울감으로 이어지는 꼬리를 자를 수 있다. 우울감이 해소된다면 좋겠다만 꼬리를 자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크다.






좋아하는 문장들을 모아보자.


핸드폰 메모장도 좋고 다이어리에 수기로 적어도 좋고. 본인이 편한방식이 최고다. 우울감이 깊어지는 어느 날 , 차곡차곡 모여있는 그 문장들을 씹어먹다 보면 생각이 확장되고 오늘이 그렇게 거지 같은 날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 순간이 꽉 막힌 어둠 속에 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지점이다. 빛을 따라 나가다 보면 , 어느새 또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더라도 숨을 찬찬이 들이쉬고 내쉬며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안부를 전해 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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