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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Sep 22. 2022

당신이라는 꽃을 피우려면

 얼마나 많은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 할까. 나는 당신을 보며 자주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신은 종종 당신을 활짝 피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행동했다. 자주 웃었고, 또 자주 울었으며 그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공허해했고, 다시 활기차 졌다. 당신이 붙잡고 웃는 상대는 보통 내가 아니었지만 울 때만큼은 격렬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이 활기차지는 이유는 보통 내가 아니었지만 당신이 공허할 때 가장 먼저 버리는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신은 나를 버렸다. 마치 나는 당신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의 삶에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너무 외로워. 너무 외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당신은 언젠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나를 앞에 앉혀두고,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울며 말했다. 그런 당신을 볼 때 나는 알 수 없는 절망감을 경험한다.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나라는 인간은 너무도 작고 하찮아서 아무도 주목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것 같은 그런 절망감을 말이다.


 이상하다. 분명 괜찮아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끊임없이, 정말 끊임이라는 게 없이 노력했다. 더 나은 미래를 갖기 위해서, 더 나은 위치에 서기 위해서. 조급함과 초조함은 내 주요 감정이었고, 악에 받혀 눈물 흘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노력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므로, 끝내 삶이 괜찮아지길 바랐다. 그렇게 노력을 해서 조금 괜찮아졌나 싶은 순간에 당신은 나를 다시 삶의 구덩이 그 어느 끝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 같은 '팔자'는 결코 행복할 수 없어.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 마냥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가벼운 인생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이내 부러워진다. 쉽게 웃는 사람들, 호의를 의심하지 않는 마음들, 부정이 아닌 긍정에 집중하는 강인함 같은 것들은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당장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어딘가에 마음이 붙잡혀 있지 않고, 어느 초조함과 쓸쓸함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유로움이 부러워진다. 세상을 유유히 부유하며,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은 경쾌함을 가진 그 발걸음이. 빼앗고 싶어 진다.


 마치 원을 그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부서져라 노력해서 인생이 조금 잘 풀리면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고 내 삶이 더 나아졌음을 확신하며 기분 좋은 나날들을 보낸다. 남들처럼 엉뚱한 상상도 하고, 우스운 얘기로 일상을 채우고, 퇴근하는 길에 보인 넓고 멋진 하늘에 감탄을 하기도 하며 '평범한 일상'을 즐긴다. 그러나 이내 다시 슬픔이 찾아온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 그러면 다시 세상은 회색빛으로 변하고 슬픔 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누더기가 된 마음을 기워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좋아지고, 또 어려워지고, 슬퍼지고, 힘들어지고, 또 괜찮아지고 그런 하찮은 원을 그리며 사는 기분이 들었다.


 신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이 하찮은 원을 그리며 사는 인간들의 삶이 재미있을 리 만무하니까. 절대 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신이라면 그런 인생은 감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마치 각 인생을 영화에 빗대어 신이 명작만을 골라 볼 작정이라면, 내 인생은 그런 명작들을 위한 스쳐 지나가는 졸작에 지나지 않을 테니 신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건 신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일에 불과하다. 신이라면 모든 인생을 명작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실패작을 만들리 없다. 신과 실패는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없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게 아픔, 고통, 슬픔의 사이클을 선사하는 것은 당신이다. 다시 당신. 수많은 사랑 노래로 연명하는 당신이다. 당신이 이렇게 나를 버릴 때, 나는 내가 부르는 사랑 노래의 쓸모없음을 가차 없이 확인한다. 당신이 원하는 사랑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구나. 당신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분명 나는 아니겠구나. 마음이 실처럼 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실을 물리적으로 끊어내고 싶다. 당신이 쓸모없어하는 내 사랑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라도, 당신이 내게 선사하는 깊은 수준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그래서 '우리'같은 팔자는 행복할 수 없다고 얘기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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