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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Oct 10. 2022

부러움을 이겨내는 방식

 어려서부터 입버릇처럼 내뱉던 환멸 난다는 말은 사실 내가 한편으로는 세상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에 불과했다.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 이 세상은 나를 위한 곳이 아니야 같은 말을 자주 꺼내면서도 그것이 결국은 내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임을 모르지 않았다. 싫어한다는 건 사실 굉장히 사랑하고 싶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 인정해야겠다.

 

 본심을 들춰 보이자면, 이 세상은 너무도 멋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멋진 자연의 풍경을 떠올리면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끝없는 바다와 너른 들판과 나뭇잎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과 같은 것을 떠올리면 지구라는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풀과 잡초 등 녹음이 무성한 한가운데 위치한 집 앞에 우산을 쓴 채로 가만히 서서 빗소리를 듣고 비 내음을 맡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물방울 하나가 풀잎 끝으로 톡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온 마음이 차분해진다.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공간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 천년의 역사를 써 내린 끝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벅차오른다. 수많은 인류의 손길로 이루어진 도시와 문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삼 내가 신이어도 이 지구를 애증이라는 감정으로 포용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속에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인간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각자만의 사정과 방식, 생각과 감정으로 행동해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죽은 것처럼 동요하지 않던 심장을 제세동 시키기에 충분하다.


 내 삶은 기본적으로 난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부정하며 살아왔었다. 남들이 최소한으로 누리는 기본적인 물질마저 제공받지 못한 컨디션으로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도 견뎌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남들과 비슷한 것들을 누리고, 탐내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지나온 내 노력에 감사하는 날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평범한 행복을 누릴 때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이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깨닫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삶은 곁에서 지켜보면 너무도 파란만장했다. 작은 역경과 커다란 성취로 점철된 그들의 서사는 곁눈질로 봐도 화려했다. 나는 내 친구 A도 되고 싶고, 또 친구 B도 되고 싶으며, 잘 모르지만 얻어 들은 지인 C나 그의 동료 D의 인생을 가지고도 싶다. 하나같이 나보다 나은 삶들이다. 더 적은 눈물과, 더 적은 땀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찬란의 현재는 누더기 같은 나의 그것과 비교되면 될수록 더욱 빛이 나는 것만 같다. 한 때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유행처럼 들려왔는데,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단 한 번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꾸준히 부러웠다.


 현대인의 필수 활동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는 SNS 활동은 이러한 부러움 또는 상대적 박탈감의 크기를 더욱 확장시킨다. 행복한 순간만, 가장 행복해 보이도록 짧게 포착한 그 장면들을 손가락으로 휙, 휙 움직여 돌릴 때마다 심장 한쪽에 금이 가는 것 같은 그 어떤 파열음이 귓가에 맴돈다. 어떤 날에는 새로운 사진이 올라왔음을 알려주는 알람을 보고도 한참을 망설인다. 이 사진을 보면 내 심장이 남아날 수 있을까? 차라리 안 보는 게 속 편하겠지만 이 죽일 놈의 호기심은 자꾸만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재촉하고, 또 한편에서는 부럽지 않다고 중얼거리는 몹쓸 자존감이 내게 "봐도 괜찮다"고 속삭인다.


 물론 알고 있다. 애초에 그들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 말마따나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는 같을 수 없다. 같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데, 그런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도 충분히 멋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김질하고, 명상을 하고 그런 와중에도 부럽긴 부럽다. 이 멋진 세상을 더 멋진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멋진 삶이 계속해서 갖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부정해보려고 애써도 나는 부러워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빌어먹을 부러움을 불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도 그들처럼 나의 행복을 전시하는 경쟁에 뛰어들기도 해 봤고, 아예 SNS를 잠시 끊어본 적도 있다. 부러워질 때마다 '그렇구나~'를 내뱉어 보기도 했고, 내 삶의 멋진 점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효과는 모두 미비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남들이 부러운 근본적인 이유는 한 가지다.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모두 허사일 것이 분명했다.


 내 삶에 더 집중하고,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점을 나열하고 그것을 해결하거나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에는 뭐가 있을지 모색하고, 이를 실행해가고 있다. 내 삶과 내 삶의 목표를 명징하게 가꾸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만이 내게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어떤 것들은 내가 해결할 수 없다. 타고난 부, 화목한 가정, 국적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니 그 부분에서의 부러움은 그저 인정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임을 깨닫고 나면, 새삼 부러움을 인정하기 쉬워진다. 심장을 깨부수지 않아도 가능해진다.


 나는 이 세상이 멋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그럴듯한 삶을 영유하는 모두의 이야기가 내게는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삶을 추구하고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음가짐을 다잡아 본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하는 구절이 있다. 맞다. 삶이란 건 어쩌면 굉장히 길고 긴 여행에 불과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에 가서 꼭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이 아름다운 세상을 더 많이 즐기고 맛보고 누리는 데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부러움은 내 삶을 발전시키는 원동력,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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