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by 이재리

나의 삶의 전반을 지배한 건 열등감. 언제나 열등감이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는 자격지심에서 시작해서 끝없이 노력해도 결국 그 자리라는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뭘 해도 어딘가 부족한 사람.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항상 그랬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 같은 곳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기 위해서 이번 여행을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커가면서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우디에 대해서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었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지조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점에서 멋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사전 예약이 필수인 곳이었다. 시간까지 지정해야 했는데,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미리 예약한 게 취소도 되지 않았다. 9시 30분으로 예약한 과거의 나를 저주하며 8시에 꾸역꾸역 일어나 메트로를 탔다. 꽤 웃긴 메트로의 낙서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 위트와 풍자가 세상을 한 층 더 살기 쉬운 곳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DO NOT STAND SO CLOSE TO ME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입장하니 가히 장관이었다. 일단 성당의 크기부터 웅장했는데 외부의 강렬함과 다르게 내부의 섬세함이 유려하게 빛났다. 사방에서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색다를 빛이 입혀지고 있었다. 가우디가 꿈꾸던 세상의 일면이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후의 일정을 모두 어그러트리고 가만히 앉아 언제까지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사실, 너무 추웠다.


바르셀로나는 그동안 머물렀던 여느 남부 도시들과 다르게 꽤 추웠다. 게다가 어제부터 비바람이 불어서 기온이 더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오늘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몸을 꽁꽁 싸매도 칼바람이 들이찼다. 손난로 겸으로 챙겨 온 보조배터리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방전되어 버렸고 탑에 올라갔다 내려온 이후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절실해졌다.

성당 탑에서 내려오면서 보는 풍경

조용히 성당에서 빠져나와 히터가 나오던 기프트 샵에서 몸을 녹이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크루아상과 도넛 몇 개를 집고 따뜻한 카푸치노도 주문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학교 건물이 보였고, 점심시간인지, 체육 시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학생들이 나와 저마다의 몸짓으로 세상을 누비고 있었다. 유명 관광지에서 빠져나와 바르셀로나 주민들의 생활을 엿보고 있으니 새삼 평화로워졌다.


커피와 빵으로 몸을 데우고 기프트 샵에 사 온 물건들을 꺼내 보았다. 성당 안을 찍은 사진들도 돌려 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건 열등감조차 들지 않는 수준이구나. 가우디의 삶과 업적에 나는 그 어떤 비빌 공간에 갖추지 못했다. 그는 어쩌면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의 생애를 요약해 놓은 영상의 임팩트는 강렬해서 나 같은 범인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 있었음을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비가 오고 그치길 반복하던 날의 바르셀로나

산다는 건 어쩌면 지속적이 열등감과의 싸움과 다르지 않았다. 비판적 사고력이 부재하던 시절부터 성공을 최고의 선이자 가치로 간주하는 세상의 관념에 차근히 젖어 들어간 탓이었다. 더 널리 이름을 알리는 것,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점하는 것. 어린 시절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은 그러한 욕망과 배치되는 현실의 암울함이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열등감은 비단 성공할 수 없는 현실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나와 내 바로 옆의 친구부터 TV 속의 유명 연예인까지를 비교하며 살았다. 이목구비의 차림새는 물론이요, 피부, 머릿결과 그 풍성함의 정도, 체형, 지방의 양, 팔의 꺾임이나 무릎의 튀어나옴 까지도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려가며 누가 누구보다 낫고 또는 그렇지 않음을 재고 따졌다. 피곤하지만 멈출 수 없는 행위였다.


여행을 와서 이러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에서 오는 근본적인 차이에서 더 많은 자격지심을 느낄 뿐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통통해도 멋있고, 자신감 넘칠 수 있으며 유행을 크게 타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지와 같은 표면적인 문제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대하는 눈빛과 태도, 유쾌한 성격 같은 내부적인 문제까지.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괜찮아, 나도 괜찮아, 그런 말을 반복하느라 지쳤다. 흐린 눈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실제로 몇 년 전에 외국에 살지 않기로 결단을 내린 데에는 이러한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저 종종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같은. 내 세상엔 여전히, 이렇게 아직까지도 아쉽고 부족한 것들 투성이다.


그래도 이 나이쯤 되면 안다. 비교하는 것도, 열등감을 갖는 것도 하등 인생에 쓸모가 없다는 사실 쯤은. 그러면 이때 내가 취할 수 있는 삶의 자세는 무엇일까. 매번 그 답이 다르긴 하지만, 이번만큼을 열등감을 승화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외모가 마음에 안 들면 가꾸면 되는 일이고, 성공이 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 근 몇 년 간 세상의 관념에 젖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무시하는 방법을 써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내 안의 욕망과도 관련된 문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조금 더 솔직해지자. 성공하고 싶다고, 더 멋있어지고 싶다고. 인정하고 차라리 노력하자. 바로 지난밤에 내 인생에 좀 더 진솔한 태도로 살아가자고 마음먹지 않았나. 유치한 욕망도 결국은 내 욕망이다. 남이 만들어줬을지라도 이제는 어엿한 내 것이다. 받아들이고 나를 계발하는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방식일 수 있다. 경쟁 사회도 싫고, 비교는 더 싫지만 나를 발전시키는 것만큼은 미치도록 즐거우니까. 이제는 좀 더 그렇게 살아보자.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현대 미술 작품이다

여기까지 적고 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니 비가 그치고 해가 나고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무리하고, 성당에서 내내 떨었던 탓에 몸이 피로했다. 게다가 손에는 기프트 샵에선 산 짐도 많고, 보조 배터리 손난로가 방전되기까지 했으니 내게는 수많은 핑계가 있었다. 조용히 미소 짓고 숙소로 향했다. 가서 낮잠이라도 자고,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에 가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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