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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Aug 14. 2023

이 정도면 버려도 돼

 위경련으로 몇 차례 응급실을 드나든 후로 생긴 말버릇이었다. 음식이 아깝다고 억지로 먹어 치우는 버릇을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서 물려받은 탓인지 유난히 음식을 버리는 게 어려웠다. 맛이 없어도, 먹고 싶지 않아도 꾸역꾸역. 당연히 어려서부터 살은 쪄서 좀처럼 빠질 줄 몰랐다.


 대학에 가고 나선 그런 식습관이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다. 빠지지 않는 살과 함께 원망스러웠다. 음식을 덜 먹기보다는 아예 안 먹는 게 편했으므로 자주 초절식, 단식 다이어트를 선택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소화 기능이 저하되었다.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었고, 4학년 졸업반의 스트레스도 어마무시했던 터라 그날 저녁으로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다 먹고 처음으로 위경련을 겪었다.


 음식을 많이 먹는 게 힘들어졌다. 배부르게 먹고 나면 어김없이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하거나 심한 경우 위경련이 다시 일어나서 등 뒤의 기립근이나 소화 기관의 활동을 촉진시켜준다는 지압점을 누르기 일수였다. 그래서 자주 되뇌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억지로 먹지 말자.’, ‘남겨도 괜찮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식을 남기는 일이 무척이나 죄스럽게 느껴졌으므로.


 다만 인간관계에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남들은 쉽게도 말하는 ‘손절’을 내가 먼저 해본 적은 거의 없다. 안 그래도 친구가 많지 않은데, 마음에 안 든다고 툭하면 손절을 했다가는 세상에 홀로 남을 거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었다.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도 싫었다. 즐거웠던 한 때를 같은 마음으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인생의 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보다는 전쟁 끝에 보상으로 얻은 전유물에 가까웠다. 소중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문 틈에 끼워져 있는 전 남자친구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정도면 버려도 돼’였다. 이만큼 힘들었으면 됐어, 억지로 관계를 이어나갈 필요는 없어. 어떤 관계는 분명히 끊어 버려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가족이건, 연인이건, 친구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에는 내 뱃속을 괴롭히는 음식물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을 들려줘야 하는 것이다.


 유난히 힘든 사람이었다. 그 전의 어떤 연애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참혹한 감정들을 굳이 느껴야 했다. 비참하고, 역겨운. 함부로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기싸움과 말싸움, 은은하고 지속적인 가스라이팅 속에서 차마 끊어내지도, 그렇다고 기쁘게 이어가지도 못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필이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긴 순간에. 다시 의미 모를 말들로 나를 붙들려는 건지, 흔들려는 건지 의중을 알기 어려운 편지가 찾아왔다. 쉽게 열어보지는 못했다. 일단 보고 나면 기분이 어떨지 뻔히 아니까.


 누군가는 헤어진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집 안으로 들고 들어오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내 경우엔 겨우 깨끗하게 비운 속에 다시금 음식물 쓰레기를 집어넣고 씹어 삼키는 일에 더 가깝다. 좀처럼 소화시키지 못해 나의 위장부터 마음까지 모두 아프게 할 자해행위. 이제는 정말로 버려야 할 시간이다. 내게 죄책감을 물어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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