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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Feb 25. 2023

헤어질 결심

 지리멸렬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뻔한 설렘과 갈등, 누구나 하는 뻔한 밀고 당기기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으레 피로가 먼저 찾아온다. 당신의 사랑 이야기엔 리듬이 없어. 눈빛 몇 번 오간 다음 같잖은 농담을 나누다 어느새 취해 키스하는 사랑 이야기는 정말이지 흔하디 흔해. 오히려 그런 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혐오해. 나는 그래.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내 것이라면 어떨까? 매번 그럴듯한 서사 하나 없이 아주 작은 끌림에도 사랑을 믿고 운명을 기억하며 미래를 다짐하는 사람이 나라면? 그 이야기는 필히 내 일기장에 적혀야 하는 무엇이 되고 만다. 그렇게 이번에도 내 사랑은 시작됐으며 그 전의 어느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2년의 유효기간이 지나갔고, 서서히 끝을 보이는 중이다. 정말이지 재미없지?


 종종 고민한다. 나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인가? 그래서 누군가 내게 주는 아주 작은 양의 관심이라도 허겁지겁 집어먹고 곧장 탈이 나버리나? 소화하지도 못할 사랑에 줄행랑을 쳐버리나? 세상 사람들은 종종 이걸 애정 결핍이라고 표현하던데.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서 그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지지 않아 평생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간절함의 포즈를 취한 채 살아야 한다고들 하던데. 내게도 그런 문제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오늘도 또 하나의 자기혐오가 쌓여간다. 차곡차곡 크기도 모양새도 다른 것들이 마음 한 구석에 조용히 그러나 이쯤 되면 꽤나 커다란 형태로 자리 잡아간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번에도 최악이다. 최악의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필요가 없어진 내 사랑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듯 버려 버리고 다시는 꺼내 보지도 않을 작정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싸워대고 또 그만큼 열렬히 사랑하던 모든 과정이 시시해져 버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졸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당에 들렸다. 고요히 앉은 채로 물었다. 이 모든 게, 내가 사랑으로 장난치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괴롭힘 당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인가요? 그들이 사랑 가지고 장난쳤기 때문에 나 또한 대갚음을 오랜 시간 동안 품어왔던 걸까요? 오늘 내게는 물음표가 유난히 많다. 제 태생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받는 형벌인가요? 저주와 비슷한 그 무엇을 타고난 죄로 평생을 사랑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 건가요? 신은 언제나 조용하다. 대체로 대답하시는 법이 없다.


 성당 문을 열고 나서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은 이 모든 장난질을 그만하자고 얘기해야겠다. 나를 원망하겠지, 분명 비난할 거야. 이제 쓸모 없어졌다고 버리는 거냐고 신랄하게 내 앞에서 나를 욕하겠지. 너 같은 게 사람 질리게 하는 거라고, 제발 자기반성 좀 하라고 역겹다고 숨도 쉬지 않고 얘기하겠지. 그렇지만 난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아니, 애초에 우리는 사랑한 게 아니야. 이걸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내 자기혐오는 다시 한 겹 짙어질 뿐이야. 다들 이렇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겠지. 정말이지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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