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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Feb 19. 2023

삶에 대한 태도를 정해보자면

 얼마 전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직 삶에 대한 내 최소한의 기본적인 태도조차 정하지 못해 당황했다. 변죽이 심한 사람처럼 어떤 때는 내 삶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희망찬 내일을 노래하다가도 바로 다음 날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이 삶을 저주하고 이 삶을 부여한 누군가를 모욕하고 원망하고 주어진 앞 날에 분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이 빠지면 모든 것을 회의하고 부정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 많이 남았음에 좌절했다.


 30년을 넘게 이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다. 더 이상은 철부지 어린애도 아닌데 이처럼 변덕을 부리는 스스로의 꼴이 우스웠다. 삶의 태도를 정해보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피도 타고 휘낭시에와 까눌레 등 구움 과자도 사 왔다. 이 정도 준비는 해 놔야 적당히 고민한 끝에 삶에 대한 내 기본적인 태도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옆에 꽂혀 있던 공책 하나를 펴서 아무 낙서도 없는 깨끗한 페이지를 열고 펜을 들었다. 요즘 애들 같았으면 태블릿에 노트 기능을 가진 어플을 열고 전자 펜을 들었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보통 내가 삶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두 가지이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러나 두 태도의 간극이 보통 사람들보다 꽤 많이 커서 이대로 가다간 조울증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나라는 사람의 기본적인 성정은 어떠한가. 긍정과 부정 그러니까 만화 캐릭터로 따지면 언제나 ‘그래도 할 수 있어!’를 외치는 주인공에 가까운가 아니면 그 옆에서 코웃음을 치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동조하는 서브 주인공에 가까운가. 아무리 생각해도 루피는 못 되겠다 싶었다.


 그러면 나는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며 살까? 좋은 일이 생기면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뭐 어쩌라고 난 다 알고 있었어’, 무슨 일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비웃음과 풍자를 무기로 세상사를 다 그게 그거라고 치부하며 살아가면 좋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내 모든 인생이 뿌듯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날엔?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며 내색도 안 하고 조용히 일기장에 적고 마무리하면 될까?


 언젠가 정했던 내 삶의 모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단단하고 밝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자. 그런데 최근 들어선 이게 좀 바뀌었다. 단단하고 절제하는, 세련된 사람이 되자, 로. 안다고 다 말하고, 있다고 다 보여주는 사람은 조금 매력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을 다 드러내지 않고, 감정이든 소비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뭐든 있어 보였다. 어린 시절의 결핍 탓에 생긴, 이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이젠 좀 거둬들이고 싶었다.


 아직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런 걸 구축해 가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의 성정과 특징을 끊임없이 파악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가고 발전시키며, 남보다 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 새삼스럽게도 남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을 깨닫고 체득하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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