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는 이 시간에 방에서 뭐 해?”
엄마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데려왔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의 친구들은 다 큰 성인인 딸내미가 평일 한낮에 방에 틀어박혀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작게 말했으면 좋았을 그런 질문들이 방문 틈을 통과해 희미하게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답하곤 했다.
‘글쎄요, 제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걸까요’
물론 엄마는 다르게 답했지만.
“아, 무슨 선생님 되는 시험 본다고, 공부해.”
엄마는 혹시 그날들을 떠올렸을까? 내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던 날들을. 그때도 엄마 친구들은 같은 질문을 했을 테지.
집이 아닌 곳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녹록지 못했다. 우리 집 근처에는 마땅한 독서실 하나 없었으므로 내게 ‘집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내 방이 나의 침실이자 독서실이었다. 공부하다 졸리면 바로 누울 수 있는, 의지와 박약의 공간. 그러나 이 열악한 공부 환경 속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건 의지박약이 아닌 소음과 더위였다.
엄마 친구들이 가끔 와서 내는 소음 외에도 집 안엔 온갖 소음이 산재했다. 엄마가 하루 종일 보는 TV 소리,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 나 몰래 야식 먹는 소리, 위층 아이의 뛰는 소리 피아노 소리, 어느 층에서 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공사 소리까지. 아파트의 최고 단점은 언제 어디서 리모델링을 시작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온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최악은 세탁기였다. 하필이면 세탁기는 내 방 뒷베란다에 위치해 있었는데 베란다에 전원 콘센트가 없어 세탁기를 돌릴 때면 베란다 창을 열고 내 방 콘센트에 코드를 연결해야 했다. 그러면 빨래를 할 때마다 등 뒤에서 세탁기의 둔탁한 기계음이 몇 시간이고 나를 괴롭혔다. 투둥, 두둥. 그런 건 아무리 귀마개를 세게 눌러 껴도 귓구멍을 때려가며 머릿속 깊은 곳까지 울려 댔다. 그럴 때마다 정말 울고 싶은 건 나였는데.
9월의 늦은 여름까지도 더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오직 한 대, 거실에만 있었는데 이 마저도 자주 키지 않았고 켜도 내 방까지 시원함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바깥의 온갖 소음들이 마치 가까운 친구 마냥 내 귓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가장 친한 친구는 고등어와 대게. 메가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들의 정보는 가끔 너무 상세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친해져야 할 일일까?
그 더위를 낮에는 어찌어찌 참아낸다고 해도 밤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자면서도 수십 번을 깼다. 밤새 뒤척인 다음 날엔 하루 종일 멍한 머리를 붙잡고 억울해해야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예민해졌고 사소한 것에도 쉽게 짜증이 났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일. 입 밖으로 꺼내기도 민망한 말들. 이를테면 왜 내 방엔 에어컨이 없는 거야. 그러면 거실에 하나 있는 에어컨도 아껴 키는 엄마가 원망스러워졌고, 엄마가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 수 있을 만큼의 여유도 없는 우리 집의 현실이 싫었다.
한번 터진 짜증은 쉽게 가시지 않아서 펑펑 울고 나서야 끝나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은 쌓여갔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도 무너지는구나. 그러나 매번 억울하고, 속상해하고, 울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고 나이는 많았다. 나는 우는 대신 조용히 이어폰을 꼈다. 소음엔 음악으로, 누군가가 암기 과목을 공부할 때 노래를 듣는 건 최악의 습관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지만 소음보다는 나았다.
좋아하는 노래, 신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러면 오히려 흥이 오르면서 비트에 몸을 맡기고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그래, 열악(여락)도 락이다. 울면 뭐 하냐, 웃어, 웃어.’
그러면 곧 현실이 견딜만해졌다.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균형이 맞아지는 기분. 그 외에는 모두 내 집중력의 문제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