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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Nov 29. 2023

졸업식날 우는 아이

   터미널에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다. 꼭 비가 왔으면 좋겠는 날이었는데. 버스들은 줄지어 열을 뿜고 있었다. 여기는 부산이라는 듯. 부산은 원래 꼭 이런 도시라는 듯. 뜨거운 열기에 습도까지 더해져 여름의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떠나가는 사람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그런 게 갑자기 야속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이 도시가 미웠다. 버스는 정해진 턴을 도는 무용수처럼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들어왔다.


   생각보다 오래 있었던 탓이었다. 떠나는 길 위에 이렇게 많은 기억을 흘려보내야 하는 이유는. 2년 4개월 하고도 며칠을 이 길 위를 걸어 다니며 보냈다. 문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만큼의 감정과 경험을 쌓았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 속에서 그 기억들이 속속들이 튀어나와 나를 놀래키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 나는 이제 부산을 떠나고 있었다.




   간밤에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같은 팀원이었던 전 직장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지막으로 한번 보자고 했다. 하고 싶은 말도 있었으니 꼭 나오라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들을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둔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내심 그립던 차였다. 10시간 이상의 공부 시간이 채워진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늦은 밤 밖을 나섰다. 심장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공부는 잘하고 있어요?”

   우리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았다. 회사를 다닐 때 내가 마음을 기댔던 사람들은 다 있었다. 내가 나인 걸 견디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냥, 저냥 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다들 한 마디 씩 보탰다. 이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다는 둥, 그래도 잘 해낼 거라는 둥, 회사 근황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내일은 그럼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가는 거예요?”

   “네, 오늘이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이에요.”

   나의 말에 다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 또한 그랬을 것이다. 언제쯤 이별이 쉬워질지 모르겠으나, 그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과의 이별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내게는 각별한 사람들이었다.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내게는 충전이자 치유였던 사람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많이 평안한 일상이 축복임을 배웠고, 안정감이 무엇인지 체득할 수 있었다. 내 세상의 견고한 벽을, 내 인생을 지탱할 수 있는 그 어떤 구조물을 세워준 사람들.


   “그동안 많이 고마웠어요. 덕분에 저는 회사에 잘 적응했는데, 이렇게 먼저 보내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택시를 기다리며 그런 대화를 나눴다.

   “저도 덕분에 웃으면서 재밌게 일했죠, 뭐. 잘 지내요. 나중에 놀러 올게요.”


   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시험에 도전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다대포 바다를 마주하고 울지 않는 게 기적이었을 만큼 불안하고 방황하던 내 마음을 잡아준 사람들. 마음속의 풍랑을 잠재워주고 또 그 위에 차분히 모래의 결을 뉘어주던 사람들.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떠나자고, 그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잘 되면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마음만큼은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뒤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짧았다. 다시는 못 볼 풍경들을 눈에 하나, 하나 담으며 돌아왔다. 더는 내 것이 아닐 풍경과 그 일상들에게 인사하며, 내가 선택한 나만의 길을 가자고 중얼거렸다.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집은 멀었다. 그리고 나는 2시간 가까이 그 안에서 울었다.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만 떨궜다. 부산에서 보낸 시간들과 만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다시는 그 포근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님이 일전에 쓰신 것처럼, 졸업식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니까.


   몇 년 만에 돌아온 집은 낯설었다. 약 10년 만이었다. 대학을 가겠다고 독립을 한 후로 쭉 혼자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미래는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해낼 수 있다고, 미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거라고 여겼었는데. 철이 없었던 건지, 무모했던 건지, 그때는 정말 그런 게 가능했었던 건지.


   짐을 모두 정리하고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모든 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시간에, 집으로 다시 돌아와 누워있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지금이라도 이 모든 결정을 되돌려야 한다는 급박함마저 들었다. 몸이 움찔했다. 이게 맞나?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불안해졌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되뇌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이게 이제 내 현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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