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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승 Jul 24. 2017

시작하며. 실리콘 밸리 정착기


점심을 먹고 회사 캠퍼스 주변 한 바퀴를 걷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5분짜리 짧은 길로, 날씨가 좋은 날은 20분짜리 전체 길을 걷는다. 사무실은 에어컨으로 서늘하기 때문에 산책하며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빛을 받고 나면, 오후 내내 편안히 일할 수 있다. 물론 잠시 머릿속을 업무에서 비워내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걷다 보면 스스로에게 원초적인 질문이 날아오기도 한다. 



내가 왜, 어떻게 여기에 있지?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음식이 제공되고, 범상치 않은 해결책을 들고 오는 동료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테크 뉴스 첫 화면에 오른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지구 반대편 에서의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풍경들이 매일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물론 동료의 갑작스러운 정리 해고로 30분 뒤에 있을 회의가 취소된다거나, 살인적인 물가에 사라지는 월급을 보고 있자면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강한 성취감과 동시에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곳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어떻게 실리콘 밸리에 디자이너로 정착했는지, 나의 이야기해볼까 한다. 




UX란 말을 들어본 것은 삼성에 GUI 디자이너 직군으로 입사하고 난 후였다. 출근 전날까지 UI/UX가 무엇인지 검색해보았지만, 추상적인 개념 들일뿐이어서 붕 뜬 느낌이었다. 첫 업무는 16x16 픽셀짜리 아이콘을 그리는 일이었는데, 점 하나가 발휘하는 힘에 대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게 UX의 기본인가 싶었다. 실력자들인 선배들 아래서 돈 받고 배운다라는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다. 아이콘 그리는 실력이 늘어가고, 다른 팀과 일하는 법을 배워갔다. 북미 시장을 담당하였기에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미국의 중소도시를 출장 다녔다. 어느덧 40여 개 가까운 모델들을 시장에 내보냈고, 출장 중 길에서 나의 손이 닿은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UX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안드로이드 최초의 태블릿 모델이었던 갤럭시 탭의 컨셉을 잡는 팀에 속하게 되었는데, 회의 시간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단순한 그래픽 작업에 적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업무가 끝난 후 혼자 스케치도 해보고, 와이어 프레임도 그리면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말문이 트인 건 얼마 후 갤럭시 노트 컨셉을 디자인하는 팀에 유일한 비주얼 디자이너로 참여하게 된 후였다. 시각적으로 풀어낼 사람이 나뿐이라는 생각에 무엇이든 생각해내고 말해야 했다. 멋지고 대단한 것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사용자를 위해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 무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구글 안드로이드의 힘이 커지는 게 보이는 시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상당수는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것들이었다. 어떤 방식과 프로세스를 따르기에 이토록 다른 결과물을 만들까 궁금해졌다.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퇴근 후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신혼이었지만, 아내는 신혼 놀이 대신 학원으로 향하는 나를 묵묵히 응원해줬다.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 JFK 공항에 커다란 이민 가방 4개를 붙들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집을 구하고, 열심히 걸어 다녔다. 첫 주부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구직 사이트인 링크드인의 개인 정보를 서울에서 뉴욕으로 바꿨을 뿐인데, 리쿠르터들에게 이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모바일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를 원했다. 스타트업을 같이 해보자는 이메일도 여럿 받았다. 얼떨떨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형편없는 영어 탓에 학교 적응조차 쉽지 않았다. 과제 내용을 제대로 못 알아들어 두 개씩 해가고 그중 맞는 하나만 제출했다. 팀 과제는 민폐가 되지 않도록 안 해도 되는 부분까지 해서 신뢰를 쌓으려 노력했다. 몸이 고생했다. 숨 돌릴 때쯤 방학이 되었고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국서 하던 것들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좋은 것은 칭찬받고, 긴가민가 하는 것은 지적받았다. 자신감이 붙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녔다. 스타트업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었다. 역시 아직 신혼이었지만, 아내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가 자정에 가까워야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다시 한번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대학원에서의 2년은 금방 지나갔다. 실리콘 밸리에 가야 했다. 수십 군대를 지원했지만, Unfortunately...로 시작하는 메일을 수도 없이 받았다.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아이가 태어났기에, 심리적인 압박은 더해갔다. 당시 삼성은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사가 되었다. 뉴욕 타임즈에 삼성 관련 기사가 안나는 날이 드물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잘 나가는 회사를 왜 그만두고 다시 학생이 되었는지 물어왔다. 뉴욕의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가는 길. 괜한 도전이었나 처음으로 후회했다. 


다행히 인터뷰 요청은 꾸준했다. 몇 번의 심기일전 후 야후에서 인터뷰를 보러 오라고 비행기표와 호텔 바우처를 보내줬다. 처음엔 웬 야후인가 싶었지만, 인터뷰를 보러 가서 생각이 바뀌었다. 구글 출신인 마리사 마이어가 수장이 되고 회사에 활기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였다. 훌륭한 팀을 만났고, 멋진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결과도 좋았다. 말 시킬까 두려웠던 회의시간도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쯤 지난 시점. 기대와 다르게 회사는 살아나지 않았다. 미래가 불안해지자 사람들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주차하기 위해 20분씩 돌아야 했던 주차장이 옥상 층부터 텅 비었다. 


회사가 휘청거리자 리쿠르터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30분에 한 번꼴로 전화와 이메일이 오는 통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중 페이스북에 인터뷰 기회를 잡았고, 아내와 안될 것 같다는 의기소침한 대화를 나눈 지 한주만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나의 실리콘 밸리 정착기는 이렇다. 그리고 진행 중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실리콘 밸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경험한 내용들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공유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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