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 엔지니어 친구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았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든 앱을 사용해보고 평가해 달라는 것.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인데,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고향 뉴스를 선별해 보여주는 앱이었다. 앱이 꽤 그럴듯한 모양이어서, 디자이너의 도움도 있었으리라 생각하고 만드는 과정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예상은 금방 빗나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디자인 탬플릿을 조합한 것이었다. 이제 디자이너 없어도 되겠는걸? 농담을 던지고 자리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요즘 들어 디자이너의 미래.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는 일이 잦아졌다. 가끔 있는 친구들과의 맥주 모임에 10년 후 뭐 하고 있을까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국식 치킨집을 미국에 내면 잘 될 거라는 주제가 화제로 올라오곤 한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나의 현재 자리가 영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14년도에 발표된 구글-안드로이드의 디자인 시스템 Material Design 은 디자인/앱 개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잘 정리된 각 항목별 가이드는 디자이너에게는 통일화에 대한 메시지를, 엔지니어에게는 환상적인 리소스를 제공해 주었다. 언제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아이콘과 픽셀 단위로 정의된 레이아웃을 조합하면 간단한 앱은 누구나 손쉽게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은 가이드의 울타리 안에 갇혔다. 그들의 가이드를 지키지 않은 독특한 UI를 가진 앱들은 추천 앱 리스트에 이름조차 올릴 수 조차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바일 UX 는 이미 사용자에게 익숙한 패턴이 정형화되었다. 창의적인 인터렉션으로 사용자의 관심과 사용성을 동시에 잡기는 점차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다. 휴... 더 이상 우리 UX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고 있는 걸까? 10년 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Ammunition이라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Robert Brunner 는 Fast Company 와의 인터뷰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디자인 교육이 추가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 전망하였다.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에게 판매하는 것에 디자인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이 더 크게 될 것이란 예측을 한 셈이다. 같은 매체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Code and Theoty의 파트너 Mike Treff는 마케팅과 디자인은 앞으로 더욱 하나가 되어 일할 것이라 내다보았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커질 거라는 공통된 전망이다.
장밋빛 의견도 있지만 미래가 불안한 건 사실이다. 심지어 로고도 AI가 디자인하는 시대니까…
이쯤에서 과거를 되돌아보기로 한다. 우리는 늘 디자인을 해왔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UX 디자인라는 말이 생소했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만큼의 위치를 갖기도 어려웠다. 아마도 10년 후에는 디자이너이지만 디자이너란 타이틀이 아닌 다른 직함을 달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이 많을 수도 있겠다. 지금처럼 모바일, 웹을 픽셀, 레이아웃 위주로 디자인하는 시대가 아닐 수 있겠다는 뻔한 예상도 해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떠한 분야던 디자인이 필요치 않은 산업은 없을 것이고, 우리는 또는 누군가는 여전히 디자인을 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실리콘 밸리 한복판에 있지만, 스스로도 미래를 예상 하기는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다시 한번 이 답이 없는 질문을 외쳐본다. 10년 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