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남아 있다.
야후를 떠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냥 한 명의 디자이너였을 뿐이었지만, 마리사 마이어와 야후의 마지막 황금기?를 함께 보낸 직원 입장에서 회사가 왜 회생하지 못했었는지 몇 가지 "개인적인 의견" 을 공유해볼까 한다.
야후는 우리가 아는 인터넷을 만든 회사다. 궁금한 것을 찾아보고, 새로운 소식을 읽으며, 메일을 주고받는다. 처음 인터넷이 만들어지던 시기 모두 야후라는 한 공간에서 할 수 있었던 기능들이다. 내가 일하던 2014년. 20주년 파티도 거하게 했었는데, 비교적 역사가 짧은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회사 치고는 이래적인 기념 파티였다. 그만큼 IT 업계에서 야후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엔지니어들이 거쳐간 회사 이기도 하다.
사실 야후가 비틀거린 건 최근 몇 년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포털에서 소셜로 인터넷의 중심이 이동하던 시기, 야후는 지속적으로 위기라는 기사를 달고 다녔고, 구원투수로 마리사가 등장한 것이었다. 나는 사실 마리사를 응원했다. 출근길에 마주치던 엘리베이터에서 늘 반갑게 인사해주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녀가 바꾼 야후의 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패배주의가 가득한 회사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직원들 역시 다시 일어나 출발점에 새로 선 기분으로 열심히 일했다.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새로운 프로덕트가 런칭되었고, 사용자로부터 호평을 받는 좋은 프로덕트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 프로덕트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오랫동안 야후는 망하는 회사라는 비아냥을 들어왔어도, 아직도 미국 전체 방문자 4~7위 (집계 사이트에 따라 차이난다) 뉴스 포털 사이트로는 1위인 사이트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고는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흐름이었다. 사용자들은 야후 대신 페이스북, 트위터, 메시지 앱 등에서 뉴스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선정한 기사보다 관심분야가 비슷한 친구가 추천한 소식에 더욱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방문자가 있고, 수익을 내고 있는 서비스를 환골탈태시키기 쉽지 않았다. 웹사이트 디자인을 조금만 업데이트해도 항의가 빗발쳤다. 멋진 디자인 컨셉들은 내부에서만 맴돌았다. 뒤늦게 사용자가 기사 선정에 참여하는 Newsroo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지만, 발표했다는 사실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비호감 브랜드가 되었다.
야후는 인터넷의 창시자 이기 함과 동시에 수익화의 창시자 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았다. 접속할 때마다 거대하게 화면을 가리는 광고라던가, 기본 서치를 야후로 바꿔버리는 플러그인, 보기 싫은 툴바 등 당장의 수익은 높아질지여도 사용성은 해치는 접근들은 오랫동안 사용자들을 지속적으로 화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야후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야후를 욕하고, 야후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야후를 욕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충성도가 낮아진 사용자들은 쉽게 다른 서비스로 떠나갔다.
- 두 마리의 토끼를 잡지 못했다.
야후는 늘 "야후는 미디어 회사인가 기술 회사인가"라는 질문을 들어왔다. 회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필요 없이, 미디어와 검색을 모두 잡고자 했다. 둘다를 잘하는 것은 야후 고유의 영역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미디어는 미디어대로, 기술적인 것은 기술대로 경쟁사에 비해 뒤쳐졌다. 마리사 부임후 미디어를 강화하기 위해 Katie Couric, David Pogue, Joe Zee 같이 각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미디어, 컨탠츠 리더들을 영입하였지만, 개인 브랜드가 더 강한 그들은 야후 브랜드를 스스로 지워버렸다. 검색에서 여전히 구글을 따라잡기 어려웠음은 물론이다. 타회사에 종속되어있는 기술을 몇 해만에 탈바꿈시키기는 벅찬 일이었다.
- 시장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언론에서 마리사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늘 좋은 기사 거리였다. 그녀가 잘해도, 못해도 일면에 올려서 신나게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 하려고만 해도 이미 질타가 쏟아졌다. 그녀는 여타 스타트업들보다 건전한 회사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1등이었던 과거의 야후와 현재를 비교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장기적으로 추진했던 프로젝트들을 기다려 주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결국 회사는 자체 회생하지 못하고 미국의 통신사인 버라이즌에 매각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야후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야후는 많은 뉴스의 오리지널 소스로 미국과 각국의 많은 사용자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 모회사와 연계를 통한 가능성도 남아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득 CJ가 떠오른다. 몇 개의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콘텐츠 중심으로 시작한 그들의 비즈니스는 성공정으로 확장되어 이제 한국 미디어의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되었다. 요즘 재미있는 한국의 티비 볼거리는 대부분 CJ 산하에서 나온 것들임에 놀랄 때가 많다. 야후의 모회사가 된 버라이즌은 Huffpost, Engadget, TechCrunch 등을 운영하는 AOL과 야후를 거느린 거대 컨탠츠 회사로 탈바꿈 중이다. 그들은 과연 한국의 CJ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컨탠츠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