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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승 Oct 25. 2018

실리콘밸리도 그랬다

멀리서 한국의 택시 시스템을 바라보다

2013년 실리콘밸리에 직장을 구해서 정착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늘 맑고 푸르렀고, 오후에 회사를 한 바퀴 돌며 머리를 식히는 것은 나의 반복되는 일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 정문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후 3시쯤이 되면, 정문 외각도로 쪽으로 택시들이 줄줄이 대기하기 시작했던 것. 퇴근 시간을 겨냥하고 급하게 이동하는 직원들을 태우려는 대기 행렬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10분쯤 걸리는 가까운 기차역까지는 대략 $30-40 정도,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샌프란 시스코까지는 $200 정도를 받았다. 미국의 택시 가격이 비싼 것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는 중형 승용차를 며칠 렌트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그래도 급하게 이동할 필요가 있는 직원들은 대안이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택시들은 오랫동안 몇 명의 호구 승객을 기다리느라 몇 시간씩 회사 앞에서 낚싯대를 들이대 왔고, 퇴근시간이면 모두 누군가를 낚아 태우고 사라졌다.


우버의 탄생은 획기적이었다. 부르면 몇 분 뒤 나에게로 와주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회사 정문에서 기차역까지는 불과 $5에도 이동 가능했고, 샌프란 시스코까지는 $80이면 충분했다. 기사에게 평점을 줄 수 있기에, 그들은 승객에게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나의 예상 도착 시간과 경로를 알 수 있었고,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나의 위치를 공유할 수도 있었다. 우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면, 사실은 그냥 평범한 중형차를 타고 있음에도 최첨단 차량을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 택시 업계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생존권을 위협한다면서 시위를 하기도 하였고, 실제로 그들의 주장이 반영되어 가장 큰 시장인 공항에서의 차량 공유 서비스의 이용이 제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우버 맛을 본 뒤었다. 일부러 공항 밖으로 10분 정도 걸어 나와 앱을 켜기도 하였고, 현재 위치를 수동으로 공항 바깥으로 이동한 뒤,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공항 플랫폼 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공공연한 팁으로 공유되곤 했었다.


택시 기사들 역시 마냥 시위만 할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기다리며, 한 명만 걸려라를 외쳤던 그들도, 적은 돈이라도 차라리 차를 운행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버가 더욱 활성화된 2015년. 퇴근시간이 가까워져도 회사 정문 앞에는 단 한대의 택시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택시에 대한 이보다 더한 이야깃거리는 수도 없이 많다. 관광객이 많은 뉴욕의 경우 그들을 상대로 한 요금 사기와 싸움이 워낙 많다 보니, 아예 택시 문에 공항까지 가는 정액 요금을 적어 놓았을 정도였다. 미국 택시도 악명이 높기는 마찬가지 였다.

승객이 타는 뒷문에 기본요금과 주요 공항까지의 정액요금이 표시되어있다. 저 안내판이 붙기까지 얼마나 많은 요금 사기와 시시비비가 있었을까.





오랜만에 한국에 갈 때면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되고 그때마다 여러 번 놀라게 된다. 빠르고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그만큼 이해 안 되는 일 겪게 되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자마자 대부분의 기사들이 "어떤 길로 갈까요?"를 물어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서울을 누비는 기사가 승객에게 길을 물어보다니, 처음엔 굉장히 의아했다. 며칠간 거의 모든 택시에서 같은 경험을 하였고, 기사님께 그 이유를 물어보니 빠른 길에 대한 시시비비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하더라. 그때 문득 한국에서의 나의 예전 경험이 떠올랐다. 회의 시간에 늦어 초행길을 빠르게 가야 했던 신입사원 시절, 순진한 나를 파악한 택시 기사는 차량을 갑자기 아파트 대단지로 진입시키고 돌고 돌아, 30분 정도를 지체하게 하였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어떤 길로 갈까요?"를 물어보는 행위는 너 초행길이니? 를 우회적으로 물어보기도 하면서, 빠른 길에 대한 시시비비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종의 떠보기로 의심되기 시작했다. 이런 류의 경험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택시 기사와 손님 사이.. 이미 서로에게 어떤 신뢰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멀어진 것이 아닐까?

 




물론 차량 공유 서비스가 만능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버 드라이버의 평균 소득이 시간당 $16 정도라고 한다. 괜찮아 보이지만 이 금액에는 보통 개인 차량으로 운행하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차량의 감가상각, 정비, 보험, 유류비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감안한 순익을 다시 산정하면 시간당 $4 이하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자잘한 시시비비부터, 강력 범죄까지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승객의 출발, 도착 주소 (이는 집주소가 될 수 도 있다) 이름, 전화번호가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은 것도 맹점이다.


우버는 내년 IPO를 앞두고 있고, 그 후로는 실적 압박이 거세질 것이다. 이는 요금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이미 많은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으로 이끌고 있기에 언제까지 마냥 소비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좋을지 나쁠지는 차치하고라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한국의 현 택시 제도의 문제점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고 고치기 어렵다는것 역시 알고 있다. 미국이 그랬고, 실리콘 밸리도 그랬다. 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 바람을 막는다면 보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뒤쳐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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