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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승 Nov 15. 2018

랜드로버 이보크. 시승기


며칠 전 이보크를 떠나보냈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든든한 발이 되어 주었기에 짧게나마 시승, 감상평을 기록해 본다. 




랜드로버 이보크의 시작은 2008년 발표된 컨셉 모델 LRX를 바탕으로 한다. 부진했던 포드 산하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인 아래서 발표된 미래의 브랜드 청사진중 하나였다. 플라스틱으로 차를 만들었나 싶었던 프리랜더의 후속 개념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공유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데뷔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2011년도 양산 때 기존 발표된 컨셉모델을 거의 변경 없이 출시했다 라는것. 우리는 그동안 모터쇼의 멋진 쇼카들이 뭉뚝한 모습으로 시장에 나오는 것에 많은 실망을 해왔었기에, 랜드로버의 양산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발표된 컨셉 모델 LRX. 거의 그대로 나왔다. 



참신하고, 미래적인 디자인은 일반 도로에서도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시승을 하는데, 신호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 길가던 사람 모두 뒤돌아서 차를 쳐다볼 정도였다. 덕분에 북미에서 초반 인기는 물량이 달릴 정도로 좋았다. 나 역시 동네에 하나남은 모델을 웃돈까지 얹어서 업어와야 했을 정도. 


북미 모델은 모두 구동 부분이 2리터/휘발유/240마력/터보차지/AWD로 단순한 구성이다. 선루프, 내비게이션 류의 몇 가지 추가 장비로 그레이드가 나뉘는 정도. 작고 가벼운 차체에 AWD. 그리고 240마력은 과분한 조합이라 생각될 정도로 힘이 넘쳤다. 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모두 밟기가 무서울 정도로 앞에서 뒤에서 끌어 밀어붙인다. 엔진은 아마도 포드것을 튜닝한 것이라 생각되는 스펙인데, 포드 모델들의 그것보다 질감에서 확실히 차이 났다. 보다 묵직하고, 보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강한 느낌. 물론 웅웅 하는 로우톤의 배기음도 차별화를 주기 충분했다. 며칠 만에 휠을 까맣게 만들어버리는 브레이크도 그만큼 매칭이 잘되어, 기본적인 가고 / 서는 것에 대한 신뢰감을 주었다.


아 물론, 2도어 라던가 컨버터블! 처럼 변종 모델도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판매량은 대부분 4도어 모델. 


적당한 가죽과 페브릭이 섞여있는 실내는 내가 좋은 차를 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기 충분한 구성이었다. 유난히 두툼한 스티어링 휠은 운전할 때마다 약간의 흥분감을 주었고, 실제 핸들링도 훌륭했다. A필러의 위치가 애매하여 옆 시야각이 좋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재규어에서 넘어온 로터리 기어는 사실 터프한 랜드로버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크고 강한 레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랜드로버는 오히려 전차종에 이것을 적용해버렸으니.. 기존의 투박한 이미지를 벗고 싶었을까 하고 이해해보려 노력해본다.


이차의 장점은 역시나 디자인이다. 크고 화려한 헤드라이트와 그릴이 유행이었던 시기에, 혼자만 작고 날렵한 라이팅을 앞뒤로 사용하여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시켰다. 남는 공간은 직선을 기본으로 한 큰 면처리로 표현해놓아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보크의 디자인은 (정확히는 컨셉 모델인 LRX) 랜드로버 디자인의 방향키 같은 역할을 하여, 이어 발표된 대부분 모델의 디자인이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다.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길에서 새 차 같은 디자인을 뽐내는 것도 이 차의 디자인이 얼마나 앞섯는지를 보여준다. 


크고 화려한 라이팅과 그릴이 유행이던 시절. 이보크는 반대로 날렵한 형태의 라이팅 구성을 선보였고, 다른 브랜드들은 이제 이 흐름을 따라 디자인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남는 공간은 직선을 기본으로 한 큰 면처리로 표현해놓아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이차의 단점은 명확했다. 쿠페형 SUV가 갖는 치명적인 그 단점. 바로 작은 실내 공간. 

2열까지 승객이 앉는 공간은 최대한 확보한 편이라 거주하는 데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지만, 트렁크는 SUV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의 실용성을 가졌다. 여행용 캐리어 하나가 겨우 들어가고, 유모차를 넣으면 다른 짐을 하나도 넣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에게 자주 농담으로 "랜드로버에서 멋진 차를 만들었는데, 트렁크를 빼먹었다"라고 했을 정도. 성능 위주로 세팅된 탓에 연비도 형편없었다. 평균 20 MPG였는데 (대략 8 Kml) 사이즈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수준.  


잔고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길에서 보이는 랜드로버는, 서비스 센터로 들어가는 차와 나오는 차 일뿐 이라는 웃픈 유머도 돌아다닐 정도니까.. 내 경험을 공유해 본다.

다행히, 나에게는 단 한건의 문제도 발생되지 않았다. 물론 최근의 랜드로버처럼 전자장비가 많이 달리지 않아서 일 수 도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휘발유 엔진을 달아서 일 수도 있다. 연중 온화한 캘리포니아 날씨 탓일 수 도 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일 수 도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둔턱을 지날 때면 가끔 여기저기 찌그덕 소리가 나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질까 귀 기울였지만, 다행히도 첫해와 마지막 해에 같은 강도의 소리가 났다. 또한 고속 주행 중 우측 송풍구 쪽에서 종이나, 낙엽이 어딘가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는 찌지직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음악을 켜면 들리지 않는 정도의 크기였기에 무시할만했다. 4년 차에 배터리를 갈았는데, 서비스 센터 직원이 -공식 서비스가 아닌 사설 업체를 이용하였다- 차를 돌려주며 배터리 위치 때문에 고생 좀 했다고 상기된 얼굴을 찡긋하긴 했었다. 유머 내용처럼 정비소를 왔다 갔다 할 만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에 나의 애정이 더욱 많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랜드로버 이보크. 지난 5년간 매일매일 우리 가족과 함께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이보크를 처음 대려온 날, 기어 다니지도 못했던 첫째 아이는 이제 킨더가든에 들어가 키 크고 얼굴 하얀 꼬마가 학교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잠이 든다. 차를 팔고 나오는 길. 이해할 수 없는 때 부림으로 나를 힘들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의 모든 인생?을 함께한 대상에게 정을 떼려고 그랬던 거 같다.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 대부분 도로가 빙판이 되어 버린 타호 가는 길, 반쯤 통제된 도로에 어지럽게 차를 대놓고 주행을 포기한 차들을 뒤로하고 유유히 주행하였던 그 순간의 핸들 감촉이 떠오른다. 이차로는 어디든 갈 수 있겠다 라고 강한 신뢰가 생겼던 그 순간. 이차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이 멋진 차에 트렁크가 없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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