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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승 Dec 13. 2018

아이씨.
실리콘밸리 디자이너 직급의 비밀.

욕이 아니다.


아이씨. 


툭 튀어나오는 욕이 아니다.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직급명이다. 생소한 용어 탓에 나 역시 처음 회사에 들어와 이게 뭔가 하고 한참을 들여다봤을 정도였다. 


IC는 Individual Contributor의 줄임말이다. 주로 디자이너, 개발자 같이 전문 영역 가지고 회사에 근무하는 직군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디자이너는 보통 IC + 숫자 조합의 직급을 가지고 있다. 보통 대학을 갓 졸업한 주니어 디자이너는 IC 2, 3 이란 타이틀을 달고, 그 윗 단계 격인 시니어 디자이너는 IC4, 5  매니저 이상급은 IC 6, 7 등의 숫자를 달고 일한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단계를 가지고 있지만, 큰 틀은 비슷하다. 


이 직군이 특별한 것은 “숫자"로 경험과 능력치를 나타내는 "급"을 표기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상하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데에 있다. 가령 IC3 가 IC6에게 보고 하거나 지시를 받지 않는다. 숫자는 숫자일 뿐,  Individual Contributor라는 말처럼 각자가 전문가가 되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숫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올라가지 않으며, 철저히 능력에 따라 올라간다. 따라서 숫자가 높은 IC는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이 아니라, 그 분야를 그만큼 잘하는 사람이다.


IC 직급에게는 쓸데없는 회의, 인력 관리 같이 전문 분야 이외의 업무를 상대적으로 덜하거나 거의 없는 환경이 주어진다. 이는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해당분야의 고수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코딩을, 리서치를 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 IC 만랩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흔한 집에서 일하기도 각자 업무가 전문적으로 나눠서 해결되기에 가능한 문화라고 생각된다. 일하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라면 디자인만 집중해서 잘하면 된다. 물론 그만큼의 책임도 내가 진다.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IC는 IC로 남을 것인지, 매니저 트랙을 탈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어느 수준을 넘는 IC에게 매니저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업무가 다른 동료에 가깝다. IC는 여전히 디자인에 집중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매니저는 지시가 아닌 관리를 한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 사용자가 편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정치처럼, 디자인도 살아있는 생물이다. 디자인 직군에 상하관계가 덜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경험치는 무시할 수없다. 여러 시행착오를 미리 겪은 탓이다. 따라서 숫자로 경험치를, 그리고 능력치를 나타내 준다. 숫자가 높은 IC는 당연히 어려운 문제 해결이 필요한 업무를 맡는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어떻게 디자인하기에 늘 좋은 제품이 나오는지를 물어온다면, 나는 그 무엇보다 IC 직급체계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 디자이너와 십수 년 차의 경력 디자이너가 수평적으로 토론하며 일하는 문화가 잘 반영된 시스템. 이것이 혁신의 기본이자 시작점 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상하관계로 얽힌 조직에서 일하게 된다면... 에 대한 문제점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디자인하게 되고, 그 윗사람은 또 다른 윗사람의 지시를 받아 디자인 방향이 이리저리 휘둘리게 된다. 어느 순간 디자인은 내 손을 떠나 집단 디자인에 가까운 행위가 되고, 막상 연필을 잡은 디자이너는 이것은 더 이상 나의 디자인이 아니다 라는 생각하게 된다.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집단을 위한 디자인. 혁신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다. 



타이틀과 본문의 일러스트는 Pablo StanleyHumaaans을 이용해 제작하였다. 

작년에 쓴 디자이너의 미래 글이 불현듯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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