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별 후에
문득 꿈에서 정신없이 헤매다 눈을 뜨니 오직 고요한 적막 뿐이었다. 어떤 빛도 소리도 없는 아주 이른 새벽, 무덤덤히 허공을 바라보던 내 눈에 조금씩 형체가 잡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색이 오롯한 하나의 색일 수 있을까, 달빛인지 가로등빛인지 모를 약간에 어스름덕분에 조금의 검음과 짙은 검음들이 어우러져 익숙한 내 방의 무채색 명암을 보여주었다. 부엌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싱크대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사각거리는 이불소리와 흘러가는 시계 초침소리가 곧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이런 것이었다 이번 나의 이별은. 이별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에 찾아온 이별이란 마치 나도 모르게 깨어 바라보는 새벽의 짙은 어둠과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지만 이 어둠에 익숙해질수록 조금씩 옅게나마 내 오감을 채워오르는 가득한 무언가가 있다. 옅어서일까, 온 신경을 세우다보니 지금까지 누워있던 이불의 촉감이 아련하고 허공에 나타난 창문 틀의 그림자가 그 때를 떠오르게 만들고 있다.
잠 못 드는 밤.
가로등 불빛마저 사라져 지금 이 어둠이 더욱 짙어질 지, 뜨는 해에 조금씩 사라질 지, 아무것도 모르는 무딘 손에 켜진 형광등 덕에 말끔히 없어져 버릴 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어둠이 당신이라면, 매일 밤 나는 이른 잠자리에 들어 당신을 보지 않기 위한 마음이 반, 그 이른 잠자리 덕에 오늘처럼 홀로 잠에서 깨어 그대에게 온 몸을 맡기고픈 마음이 반에서 조금을 덜고, 그 조금은 당신이 나를 삼키어 빛나는 곳에서조차 내가 당신을 보았으면 한다는 욕심이 더해져 하나의 나를 이루고 있다.
희미한 형체조차도 보이지 않게 감은 눈 앞에 또다시 익숙함이 내게 못된 손을 뻗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