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먹으러 갈래?"
오늘 점심은 쌀국수가 먹고 싶었다. 아내는 평생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쌀국수'를 선택하는 사람. 쌀국수를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나도 애정을 품게 됐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 양지와 차돌의 맛. 적당히 아삭한 숙주의 씹힘이 매력적이다. 화장품 냄새 같았던 고수가 향긋 방긋한 지경.
강릉에는 우리 입에 맞는 쌀국수집이 없다. 양양에 맛있는 쌀국수집을 찾아 두고 자주 먹으러 가고 있는데. 며칠 전 양양 쌀국수집 사장님이 3개월간 겨울방학을 떠나버리셨다. 작년 이맘때도 훌쩍 떠나셨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있나. 우리는 30분 더 투자해 속초에 가기로 했다. 속초는 양양보다 쌀국수집이 많다.
"완앤송. 여기 괜찮을 것 같아."
"오 내가 전에 찾아둔 곳이야."
맛있어 보이는 쌀국수집을 고른 후, 가을 하늘 시원한 바닷길 따라 속초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면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지만 멋이 없다. 가는 길이 지겨우면 피곤하고 맛이 없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함께 수다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한 과정을 즐긴다. 새로운 쌀국수 맛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엄청 조용한 곳에 있네."
한 시간을 달려 속초의 쌀국수집 완앤송에 도착했다. 영랑호 근처 한적한 곳에 2층 주택의 외형을 간직한 마당 넓은 가게. 젊은 부부 사장님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 7년 전 이곳에 가게를 차리기 전. 속초에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집이 없어 강릉까지 가서 드셨다고 한다. 그게 귀찮아서 직접 만들어 먹다가 결국 쌀국수집을 차렸다는 스토리. 7년이 지난 지금, 강릉에서 맛있는 쌀국수를 찾아 여기까지 오게 만드셨네.
이곳만의 특별한 국물이 정말 맛있다. 밥을 말아먹어도 좋을 맛.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국밥 메뉴가 같이 있다. 고수를 추가해서 먹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베트남 쌀국수' 스러운 맛을 기대하는 아내의 입맛은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맛이 있다 했다. 다행히 아내는 음식 맛의 다름을 안다. 개성을 수용할 수 있으면 취향이 다양해진다는 것도.
"문우당 가야지."
쌀국수를 싹 비우고 문우당으로 간다. 우리는 속초에 오면 꼭 문우당을 간다. 문우당에 가려고 속초로 향하기도 한다. 강릉에는 두 개의 중소 서점이 있는데, 책이 많지가 않다. 원하는 책이 없는 경우도 많다. '문향의 고장'이라는 강릉이 아닌, 인구 적은 속초에 동아서점과 문우당이 있다는 게 부럽다.
왜 문우당이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양한 책이 잘 진열되어 있어서 인지. 북적거리지도 휑하지도 않은 손님들 덕분인지. 한번 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점을 돌아다닌다. 분야별로 한 번씩 다 가보고, 새로 나온 만화책도 구경한다. 각자 끌리는 책을 찾다가. 슬쩍 다가가 보여주기도 하다가. 책 하나를 두고 가볍게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쉽지만 강릉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정신을 차리고 서점을 나오니 책이 다섯 권이다. 우리는 코앞에 온 겨울을 준비하는 배고픈 다람쥐 두 마리. 집에 오자마자 차곡차곡 책을 쌓았다. 든든하고 따뜻하다. '너를 보니 나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하셨던 엄마가 생각난다. 책장의 책을 보니 나는 안 읽어도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