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행복의 수요일. 일주일 중 유일하게 매장을 쉬고 있는 날이다. 주 사일만 일하며 체력을 비축한 작년의 업보로, 이번달부터는 주 육일을 일하며 열심히 매출과의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 나는 이 금 같은 휴일에 치과를 가야만 했다. 몇 년 전 했던 잇몸치료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려서 가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가는 나이 어린 틀니 할아버지가 될 테니까. 치과 가야지.
“초당에 돈가스 먹으러 가자”
"돈가스가 먹고 싶어? 그럼 가야겠지..."
아내는 내게 치과 가기 전에 돈가스를 먹자고 했다. 돈가스를 좋아하는 나지만 신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오예'를 외치며 눈을 반짝였겠지. 오늘은 다르다. 난 곧 치과를 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초당의 고성장미경양식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마치 치과에 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달디단 밤양갱 같은 말로 유혹하고 있는 부모님 같았다. 돈가스를 다 먹고 식당을 나설 때까지도 치과 얘기는 하지 않을 테지. 아이는 다가올 미래도 모르고 맛있는 돈가스를 먹겠지. 고통의 눈물을 잉태한 돈가스를!!!
"여기 차 없는 거 오랜만에 본다"
"그러네..."
나의 유치한 망상이 이어지는 동안 차는 초당의 허균 생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많았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비성수기의 강릉은 허전했다. 주차장과 식당은 거리가 꽤 있지만 일부러 걷기로 했다. 우리는 이렇게 가끔씩 일상에서 운동을 짜내며 생명을 연장하곤 한다. 3월 중순에 약간의 눈비가 내리는 게 성가시다.
"옛날돈가스 두 개 주세요"
오후 1시. 고성장미경양식에 도착했다. 치과 진료 2시간 전. 우리는 이곳의 대표 메뉴인 옛날돈가스를 주문했다. 따뜻한 수프가 먼저 나오고, 곧 옛날 경양식당식 돈가스가 따라 나왔다. 돈가스는 크고, 고기가 부드러웠다. 소스는 달달하면서 약간의 새콤함도 느껴져서 맛있었다. 고기를 씹으니 치과를 잊고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먹다 보니 옆 테이블에 손님 한 명이 앉았다. 그는 오자마자 스마트폰 소리를 크게 높이고 무언가 보기 시작했다. 홀로 안방에 있는 듯 정치방송을 반찬 삼아 돈가스를 먹었다. 몹시 시끄러웠지만 그가 혼자 밥 먹기 외로워서 그러나 보다 생각했다. 식당 사장님이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자영업은 쉽지 않다.
"휴... 배불렀는데 다 먹어 버렸다"
"어이구! 남기지 그랬어"
"지구와 내 건강 사이에서 고민했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근처 와인샵에서 마켓 행사 구경을 했다. 좋은 의미를 가진 행사여서인지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 모두 환한 표정이었다. 우연히 지인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도 나누었다. 갑자기 맑아진 날씨 덕에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걷기 편했다. 그리고 차에 탄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치과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치료 잘 받고 와"
볼일이 있는 아내를 두고, 나는 혼자서 치과에 갔다. 치료는 금방 끝났다. 입안을 네 구역으로 나누어 한번에 한 곳 씩만 하는 거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따끔하게 잇몸 마취를 하고 광산의 곡괭이로 이와 잇몸을 긁어내는 기분을 느끼면서, 아프면 들라는 손을 어느 정도 통증에 들어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치료가 끝났다. 뭔가 시원해 보이시는 원장 선생님은 2주 후에 또 보자고 하셨다. 치과를 나오니 맑았던 하늘에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