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커피가 유명하다. 시원한 바다 풍경이 깊은 커피 향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곳이고,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와 테라로사가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실력 있는 로스터리 카페도 곳곳에 숨어 있다. 덕분에 빵과 디저트 역시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이 시대의 커피와 빵, 디저트는 한쌍이니까. 나는 디저트를 무척 좋아한다. 당뇨 유전자나 건강에 대한 걱정만 아니면 매일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강릉에 새로운 빵집이나 디저트 카페가 오픈하면 한 번은 방문해 본다. 언제든 골라 먹을 수 있게 취향에 맞는 몇 곳의 매장도 정해두었다.
그중 하나가 임당동162. 번지수를 이름으로 하는, 임당동성당 아래에 있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구움 과자 전문점이다. 서점을 가거나 주변에 볼일이 있을 때 가끔 이곳에 들러 디저트를 사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이곳도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우리 매장을 주육일 운영으로 바꾸면서 오후에는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졌는데, 때마침 잘되었다 싶어 배달 주문을 한번 시켜봤다. 시원한 아이스라테 한잔과 에그타르트, 마들렌, 피낭시에를 골고루 담아 주문했다. 택배와 배달은 언제나 설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기사님이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매장에서 본 비주얼 그대로의 디저트들이 맛있어 보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라테도 맛있어서 역시 여긴 강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주문하지 않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과 디저트 하나가 더 왔다. 내가 잘못시켰거나 배달이 잘못 온 건가 싶어서 영수증을 확인했다. 주문은 제대로 들어갔다. 다시 보니 아메리카노와 디저트포장에 서비스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디저트들이 담긴 봉투에는 사장님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주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 매장에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아직 방문을 못 드려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쪽지였다. 배달 수령 주소에 적힌 매장 이름을 보고 어딘지 알게 되셨나 보다. 강릉처럼 좁은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다 보면 은연중에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장님이 보내주신 감사한 서비스는 퇴근 후 아내와 맛있게 나눠 먹었다. 사장님께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2주가 지났을 무렵. 전에 먹었던 디저트가 또 생각이 나서 다시 배달 주문을 시켰다. 이번에도 좋아하는 라테와 에그타르트, 마들렌 골랐다. 곧 배달기사님이 도착하셨다. 기사님의 손에는 또 두 개의 커피가 들려져 있었다. 이번에도 커피와 과자를 서비스로 넣어 주셨다. 사장님이 반가운 마음을 또 표현해 주신 것 같다.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함께 느껴졌다. 내 주문이 괜히 부담을 드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러다가는 더 이상 배달 주문을 시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사실 사장님은 '부담스러우실 테니 이번까지만 더 넣어서 보내드려야지' 생각하고 있으실 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정을 알 수 없는 지금의 나는 '이제 서비스는 그만 주셔도 된다'라고 전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마음 상하지 않으시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지난번처럼 DM으로 잘 적어 보낼까. 찾아가서 얘기를 할까. 보내주신 마음을 알아서 더 조심스러웠다. 길어진 고민으로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 감사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능숙하지 못한 내 문장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 이번에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매장에 직접 찾아가서 웃으며 얘기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부담스럽지 않을 '서비스'처럼 가벼운 선물과 함께. 선물을 고르는 건 머리 아픈 일이지만, 반가운 인사를 나눌 매개체로 생각하니 재밌게 느껴진다. 아내와 상의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