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다에 가야겠어."
"경포호수 들렀다 갈 거야?"
"아니. 바다가 보고 싶어."
이상한 아침이다. 눈을 뜨자 곧 바다가 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강문해변으로 향했다. 다른 날이었으면 경포호수에 들러 산책을 즐기고 바다로 갔을 텐데. 오늘은 그냥 바다를 보고 싶었다.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동안 창밖 풍경을 구경했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눈밭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강릉에서 가장 큰 교회는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타이어 펑크 났나 봐."
"어떡해. 여행 와서 신났었을 텐데."
"그러게. 추억거리 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해야겠지."
강문해변에는 2개의 공영주차장이 있다. 일요일 아침의 제1공영주차장은 이미 만차여서 뒤편의 제2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차 앞에 서서 곤란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렌트한 자동차의 타이어에 펑크가 나있었다. 한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알아보고, 다른 사람은 다급히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관광객들의 기분을 걱정했다.
곤란한 사람들의 안녕을 빌며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강문 바다를 보며 천천히 해안길을 걸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둔 조형물 앞에서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친척들이 모여 놀러 왔는지 오래간만에 보는 대가족이었다. 우리는 화목한 가족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슬쩍 돌아서 지나갔다.
"강릉바다에 '안녕히' 하고 있어?"
"응? 아니 그냥 보고 있었는데."
해안길 중간쯤에서 해변으로 내려갔다. 아내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채도 높은 새파란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구름 덮인 날씨 때문에 바다도 흐렸다.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아내가 말했다. 요즘은 경주 얘기만 하고 있으니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커피 마시고 싶어."
"그래. 시간이 없으니까 돌아가면서 마시자."
해안길 끝까지 걸어 스타벅스에 갔다. 어디에나 있는 스타벅스에 사람이 제일 많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 아웃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앉아있는 커플 한쌍이 보였다. 여자는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건강해 보였다. 다시 바다를 보며 해안길 반대쪽 끝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벤치 위에서 모래와 장난감을 펼쳐 놓고 놀고 있는 아이를 봤다. 옆에는 아이의 아빠가 함께 있었다. 아이 아빠는 우리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ㅇㅇ야 다 놀면 이거 치우고 가야 해'라고 말했다. 주차장 앞에 도착했을 때 유모차를 타고 나오는 강아지를 만났다. 강렬한 빨간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고 있는 주인 분들 덕분에 하얀 강아지의 귀여움이 더 잘 보였다. 주차장 안에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곤란한 사람들이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저 멀리서 레커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바다가 좋아 강릉에서 살고 있다. 바다를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다에 오면 우리와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재밌다. 강릉의 바다가 인적 없는 그런 바다였다면 나는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초당의 툇마루 커피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조금 더 가면 나오는 갤러리밥스 앞은 바쁜 주차요원과 정체된 차량들로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