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새로 맞춰야 했다. 요즘 쓰고 있던 안경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다.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안경렌즈는 생활 습관에 따라 1~2년에 한 번은 바꿔줘야 한다. 깨끗해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흠집이 많이 나게 되고 황변현상도 생기기 마련이다. 안경테야 뭐 멀쩡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안경테와 렌즈 둘 다 바꿔야만 했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 맞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테가 예쁘고 가벼워 마음에 들었었다. 얼굴에도 잘 어울렸다. 가격 역시 비싸지 않아 좋았었다. 하지만 단편적인 요소만 고려한 나의 구매결정은 오래도록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안경은 기능적 특성이 제일 중요함과 내 얼굴의 특징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함을 간과했었다. 내가 고른 안경은 나와 달리 코가 크고 콧대가 높은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매일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안경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불편함을 느꼈다. 작은 움직임에도 안경은 쉽게 자리를 이탈했고, 눈의 피로와 함께 가끔 두통을 느끼기도 했다. 몸이 적응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나는 버티고 또 버티다가 한계에 도달했다. 안경은 몸에 맞춰야 하는 물건이라서 '맞춘다'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몸을 안경에 맞추려 하고 있었다. 참 미련한 짓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사실 잘못 맞춘 안경을 쓰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면 조금 일찍 새 안경을 찾아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이 안경 바로 전에도 나는 불편한 안경을 선택했었고, 아까운 비용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안경을 또 맞췄었다. 연속해서 두 번의 실수를 하다니. 돈을 버리는 것보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더 싫었었나 보다.
"안경 맞추러 가자."
"언제? 지금?"
"응. 디자인은 자기가 골라줘."
"왜? 원하는 거 없어?"
"난 안 보여서. 어차피 이거 자기가 볼 얼굴이야."
"아... 그건 그래."
나는 마침내 스스로의 모자람을 반성하고 새로운 안경을 맞추러 갔다. 아내와 함께 안경점 세 곳을 돌아다녔다. 안경을 벗으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디자인 선택은 아내에게 맡겼다. 나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러니 안경 쓴 내 얼굴을 제일 많이 그리고 오래 봐야 할 사람은 아내였다. 내 안경을 선택할 권리는 아내에게 주어 마땅했다. 디자이너가 이상한 안경을 고를 리 없다 믿고 있기도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안경들을 착용했다. 아내가 디자인을 골라주면 내가 써 보고 상태를 체크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있는지, 움직였을 때 흘러내리지는 않을지. 무게는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은지. 아내와 나의 2단계 점검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안경사님께 또 확인을 거쳤다. 왜 저러나 번거로우셨을 텐데 끝까지 친절하게 살펴 봐주신 안경사님께 감사했다. 아무튼, 우리는 철저한 분업 시스템으로 내 맞춤 안경을 골라냈다.
나는 지금 잘 맞춰진 안경을 쓰고 만족스럽게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