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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Mar 31. 2024

머리 자르던 날의 추억

"머리 자를 때 됐네."

"그런가? 괜찮은 거 같은데."

"아니!"

 

 머리를 자른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나는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 객관적인 머리 상태를 잘 모른다. 아내의 '머리 자를 때'가 됐다는 말은 보기에 몹시 지저분하다는 뜻이다. 언어의 해석은 끝났다. '곱게 하는 말'이 바뀌기 전에 머리를 자르러 가야 했다.

 얼른 커트 예약을 하고 동네 미용실로 향했다. 머리를 자르는 일은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아니, 머리를 자르는 건 미용사님이니 귀찮아해야 하는 건 미용사님이다. 나는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주제에 왜 그럴까.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다섯 살 꼬마도 하고 있는 세상 제일 쉬운 일 중 하나다. 집에서 미용실까지 가는 게 귀찮은 건가. 너는 '출근은 귀찮아서 어떻게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한 시간 넘는 산책은 무슨 재주로 다니냐'라고 자책하며 미용실에 도착했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옆머리는 짧게 쳐주시고, 다른 곳은 그냥 다듬어주세요."


 대충 '알아서 잘 잘라주세요'라 말하려는 욕구를 참아내고, 아내에게 전달받은 커트 지령을 미용사님께 전달했다. 옆머리가 많이 뜨는 나를 위해 최적의 커트 범위를 찾아 입력해 주었다. 미용실에 가기 전까지 몇 번을 상기시키며 기억했고 빠진 거 없이 무사히 잘 말씀드렸다. 다행이다. 집에 가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거의 매일 모자를 쓰고 다닌다. 모자를 좋아 하지만 쓰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쓴다. 어려서부터 머리 손질하는 재주가 전혀 없었다. 모량이나 모질도 좋지 않아서 가만히 두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가장 제 멋에 취해 산다는 사춘기 시절에도 헤어스타일은 포기했었다. 모자는 간편하게 이 모든 단점을 커버해 준다. 옷에 따라 골라 쓸 수 있으니 나름의 재미도 있다. 그러니 내 머리 위에는 늘 모자가 있었다. 미용실을 다녀와도 다음날부터 다시 모자를 쓰고 다닌다.


 기껏 열심히 잘라줬더니 모자를 쓰고 나타나는 사람. 미용사님 입장에서 참 일한 보람 없게 만드는 손님일듯하다. 대신 나름의 노력 하나를 하는데, 미용사님이 머리를 잘라주시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어드린다. 아이, 남편, 주변, 지역, 연예인 이야기까지. 드넓게 펼쳐지는 주제들에 맞춰 적당한 대답과 반응을 내어 드린다. 자르는 후의 낙담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자르는 동안은 하시는 일이 기분 좋게 느껴지셨으면 해서. 어렵게 말하자면 미용에 대한 물질적 비용에 더해 나로 인해 상실될 직업적 보람에 대한 정신적 피해 비용을 고려, 감기는 눈꺼풀과 졸음을 참아내며 나와의 대화를 서비스로 지불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정도 머리를 자른 시점에서 미용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미용사님은 양해를 구하고 잠깐 전화를 받으러 가셨다. 혼자 운영하는 동네 미용실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하교 중인 아이들의 전화일지도 모르니 편하게 받으시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데 어렸을 적 머리 자르던 날들이 떠올랐다.


 예닐곱 살 무렵 아빠와 이발소에 갔던 날 중 하루였다. 80년대 말. 아빠 손을 잡고 도착한 작은 시골 이발소. 문을 열자 들려오는 라디오소리와 아저씨들의 매운 스킨 냄새. 아빠는 먼저 와있는 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며 의자에 앉았다. 나도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아빠가 먼저 머리를 자르는 동안, 나는 이발사 아저씨가 키를 맞추기 위해 의자에 놓아주신 합판에 걸터앉아 있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움직여 보고, 탁자에 올려진 아저씨의 이발도구를 구경했다. 이발사 아저씨가 실수로 아빠 머리카락을 다 잘라 대머리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 후에도 이발사 아저씨는 절대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 아버지 머리카락은 누가 그랬을까.

 내 차례가 되었고 이발사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그 시절은 가위와 칼날을 사용해서 이발을 했는데, 나는 강한 꼬맹이가 되고 싶어서 칼날이 눈앞에 보여도 일부러 눈을 감지 않았었다. 아마, 얘가 왜 이러나 하셨을 거다. 눈에 머리카락 다 들어가게. 아저씨는 내게 몇 학년이냐? 이름이 뭐냐? 물어봤었다. 그러고는 쭉 아빠와만 대화를 나누셨다.


 엄마를 따라 처음 미용실에 갔던 날도 기억난다. 90년대가 되었고 이제 남자아이들도 미용실에 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와 이발소에 가고 싶었다. 아빠는 바쁘다며 엄마가 나를 미용실로 끌고 갔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향긋한 샴푸 냄새와 고약한 파마약 냄새가 동시에 느껴졌다.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 너머로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넓은 미용실 안은 나는 도저히 뭐가 재밌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리고 있는 아가씨와 아줌마들이 가득했다.

 엄마는 익숙하게 미용실 안 사람들과 안부를 나눴다. 나는 그 옆에 멀뚱히 서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엄마는 소파에 앉더니 미용사 아줌마에게 '얘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잘라 달라'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혹시 같은 반 여자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창피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를 미용사 아줌마에게 넘겨준 엄마는 이미 다른 아줌마들과 떠들며 웃고 있었다. 내 머리카락을 빗어주는 미용사 아줌마의 손길은 섬세했다. 이발소 아저씨의 씩씩한 가위질과 다르게 조심조심 부드럽게 머리를 잘라주셨다. 아줌마의 딸아이도 우리 학교에 다닌다고. 만나면 친하게 지내달라고 웃으며 부탁하셨다. 나는 미용실 아줌마의 재밌는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다 자르고 거울을 보니 머리도 더 예뻐 보였다. 그 후 다시는 이발소에 가지 않았다.



"머리 괜찮으세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커트를 하고 샴푸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다시 머리 정리를 하고. 40분 정도 걸려 미용이 끝났다. 집에서 나올 때는 정말 귀찮았지만 막상 자르고 나니 가볍고 상쾌했다. 오늘은 전화통화를 잠깐 기다렸던 덕에 잊고 있었던 예전의 추억들을 떠올려 볼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머리를 자르던 그 시절 내 모습이 기억나실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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