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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샤 Aug 14. 2024

[한자 에세이] 상승과 하강, 그리고 비상

한자로 알아보는 세상 이야기 14

대학생 시절 왼발에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뜨거운 기름이 그대로 쏟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부 안까지 타들어가는 느낌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응급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시름했던 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치료를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강의를 들으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을 집에서만 보내니 우울감이 차오르더라고요. 그때 제 자신이 참 처량했습니다.


치료의 시간이 끝나고 두 발로 온전히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을 절실히 체감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굴곡이 없는 사람이 드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평범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저마다의 우여곡절 스토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그래프가 쭉 상승하는 것 같다가도 한순간 떨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는 날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듯한데 이는 더 높이 날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기였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편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가까이에서 보기보단 멀리서 봐야 하는 게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승(上昇)은 上(윗 상), 昇(오를 승)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한자의 뜻을 가지고 풀이하면 '위로 오르다'입니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이야기하면 낮은 데서 위로 올라는 걸 뜻하죠. 上(윗 상)이 활용되는 단어는 무수히 많습니다. 위를 향해 발전하는 것을 향상(向上),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부상(浮上), 끌어올리는 것을 인상(引上)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上(윗 상)이 포함된 단어는 모두 '위'를 의미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다 보니 크게 어렵지 않은 한자입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기생충> 한줄평이 떠오릅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 문장은 한자어를 남발했다는 혹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승, 하강, 명징, 직조, 신랄, 처연, 계급, 우화. 한자 단어를 제외하면 문장 자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압축적으로 또 자세하게 표현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자의 효용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언어의 감도가 다른 사람과는 소통이 어려울 수 있죠. 그럼에도 상황에 적절한 표현을 찾아 사용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을 놓칠 수 없습니다.




하강(下降)은 下(아래 하), 降(내릴 강)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한자의 뜻을 가지고 풀이하면 '아래로 내려감' 정도가 되겠습니다. 降이라는 한자는 두 가지의 음과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릴 강, 둘째는 항복할 항입니다. 이 글에서는 (내릴 강)의 의미를 담아낸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르고 내리는 것을 승강(乘降), 등급이나 계급이 내려가는 것을 강등(降等), 비가 내리는 것을 강우(降雨), 눈이 내리는 것을 강설(降雪), 비와 눈 등을 합쳐 물이 내리는 것을 통칭해 강수(降水)라고 합니다. 이처럼 降(내릴 강)이 들어간 단어는 모두 '내려가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降(내릴 강) 한자를 보면 떠오르는 <맹자> 구절이 있습니다.

고자 하편에 수록된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만든다.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만들어 무언가를 할 때마다 하고자 하는 바를 어그러지게 한다.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고 본성을 인내하여 이전까지 해내지 못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志,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為,所以動心忍性,曾益其所不能。

큰 일을 해낸 인물들이 과거에는 고난의 시절을 보냈다는 걸 맹자가 설명합니다. 하늘이 큰 임무를 내려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일종의 테스트를 한다는 맥락입니다. 근시안적으로 볼 때는 누구보다 하강 아니 추락의 현실을 보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움트는 시기입니다. 비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비상(飛上)이란 飛(날 비), 上(윗 상)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한자의 뜻을 가지고 풀이하면 '위로 날아가다'입니다. 높이 날아오른다는 비상은 단어 자체에서 벅차오름이 느껴집니다. 飛(날 비)가 활용되는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중으로 날아서 가는 것을 비행(飛行), 더 높은 곳을 공사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비계(飛階), 높이 뛰어오르는 것을 비약(飛躍)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飛(날 비)가 포함된 단어는 모두 '날다, 오르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비상. 오묘한 동음이의어입니다. 비상(飛上)은 높이 날아오르다는 의미지만, 다른 비상(非常) 예사롭지 않은 긴급 사태를 의미합니다. 겪고 있는 시련을 이겨내고 높이 날아오르길 기도합니다. 힘든 시기를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참고 사이트: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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