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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샤 Aug 16. 2024

[한자 에세이] 차가운 냉면, 따뜻한 온면

한자로 알아보는 세상 이야기 16

새벽과 저녁에는 그나마 바람이 불어 선선한 요즘입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식초와 겨자를 잔뜩 풀어넣어 먹는 냉면이 절로 생각납니다. 후라이드와 양념치킨처럼 음식 선호도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물냉과 비냉의 공통점은 차가운 면이라는 겁니다. 


차가운 냉면. 어떠신가요? 누구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고, 누구는 뭔가 거슬린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따뜻한 온전, 차가운 냉면. 당연해 보이는 이 표현은 과연 뭐가 문제일까요?




냉면(冷麵)이란 冷(찰 랭), 麵(밀가루/국수 면)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한자의 뜻을 가지고 풀이하면 '차가운 면'입니다. '차가운 냉면'을 풀이하면 '차가운 차가운 면'이 됩니다. 차가운이 반복됐기에 강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글을 쓸 때는 '차가운 냉면'과도 같은 표현은 자제하는 편이 좋습니다. 글이란 정보나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쓸 때, 줄일 수도 있는 부분이나 불필요한 부분을 다듬지 않는다면 의미 전달이 모호해지고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읽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고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게 썼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冷(찰 랭)이 활용되는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가운 기운을 냉기(冷氣), 빠른 속도로 차갑게 하는 것을 급랭(急冷), 얼리는 것을 냉동(冷凍)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冷(찰 랭)이 들어간 단어는 모두 '차갑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비슷한 한자는 寒(찰 한)이 있습니다.




차가운 면이 있으면 따뜻한 면도 있겠죠? 따뜻한 면은 뭐라고 할까요? 바로 온면(溫麵)입니다. 이제 '따뜻한 온면'이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온면(溫麵)이란 溫(따뜻할 온), 麵(밀가루/국수 면)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한자의 뜻을 가지고 풀이하면 '따뜻한 면'입니다. '따뜻한 온면'을 풀어서 설명하면 '따뜻한 따뜻한 면'입니다. '차가운 냉면'과 같은 오류입니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의사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는데, 글자를 줄이면 줄일수록 좋겠죠?


溫(따뜻할 온)이 활용되는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따뜻한 기운을 온기(溫氣), 따뜻하거나 차가운 정도를 온도(溫度), 따뜻한 바람을 온풍(溫風)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溫(따뜻할 온)이 들어간 단어는 모두 '따뜻하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따뜻하다보다 온도가 더 높으면 덥다고 하지요. 熱(더울 열)이 그런 한자입니다.




'길고 긴', '멀고 먼'처럼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는 의미를 축약할 수 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핵심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낮은 데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상승'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조어력과 압축이 뛰어난 한자는 굉장히 효율적인 언어입니다. 내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한 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할 때 짜릿함을 느낍니다. 혹시.. 저만 느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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